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2월호의 시(1)

김창집1 2025. 2. 14. 00:03

 

 

사소한 진리 여국현

  

 

숲 속의 새를 날아 잡아 가둘 수 없어요

새를 부르는 것

내가 숲이 되는 길뿐이지요

 

자유로운 그대를 사랑으로 옥죌 수 없어요

그대를 사랑하는 것

내가 사랑이 되는 길뿐이지요

 

바람의 노래 시를 마음만 뻗쳐 품을 수 없어요

시를 품는다는 것

내 삶이 시가 되는 길뿐이지요

 

 


 

죽음의 능력 나금숙

 

 

너는 나비가 든 병을 내밀었다

한때 화려했던 날개를 접고

고요하게 정지된 제비호랑나비는

즐겨 듣던 에피타프, 긴 노래를 생각나게 했다

병 속에 고인 침묵이 노래를 따라 흔들렸다

박제된 죽음이

복제되는 순간

잿빛 하늘을 환기시킨다

손을 들어 하늘을 커텐처럼

끌어내린다

융단같이

저기가 여기에 펼쳐진다

천막 안 깊디깊은 곳,

단지 속에 감춰진

작고 희고 둥근 씨앗에도 미열이 난다

 

 


 

슈 꼬레아 나병춘

 

 

카슈미르 스리나가르 호수

잘생긴 청년과 말을 나눈다

고맙다는 말이

어떻게 되느냐 물으니

슈 꼬레아란다

슈 꼬레아

 

우리나라 이름

슈 꼬레아

고맙다는 슈 꼬레아

멀리 타향에 왔더니

더욱 고향 산하가 그립다

 

고마운

꼬레아

나의 모국어

 


 

소설 즈음 남대희

 

 

개울가 풀들 누웠고

지난여름 기억들 애써

일으켜 세운다

입동이 지났으므로

마를 것들은 다시 몸을 눕혔다

 

햇살이 물 위에 누워 한번씩

손가락을 튕겼다 접는다

그 위로 물까치 그림자

지나간다

 

 

*참나무겨우살이 꽃


 

겨우살이 꽃 이범철

 

 

겨우살이, 꽃을 본 일 없지만

오늘도 그 꽃 보러 맨발로 가네

몸 그대로 꽃인 겨우살이 겨울이 없네

봄부터 가을까지 다 겨울이네

꽃피는 봄 무성한 여름 낙엽 지는 가을까지

진한 초록으로 꽃을 피우네

마음이 심란할 때 변함없는 그 꽃 보러 산에 가네

산길 언저리 나뭇가지 뻗은 하늘 끝에서

언제나 피어 있네

언제부터 나뭇가지 위에서 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빛을 잃은 검은 참나무 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버티는 건

겨우살이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네

믿음이 언젠가는 꽃을 피운다는 걸 알기 때문이네

너의 가지가 나에게 뿌리가 된다는 것

가지에게 꽃이 되기로 했기 때문이네

껍질이 다한 나무는 믿기 때문이네

어디든 가서 꽃이 되려거든

겨우살이처럼 살면 되네

 

 

                          *월간 우리2월호(통권 제440)에서

 

 

                                                   *열매 달린 겨우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