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조(2)
♧ 이 친구란 말 - 조한일
형님, 동생 하다가
난데없이 친구 됐다
기분 좀
틀어졌다고
나이 차이 많이 나도
“이 친구,
정말 안 되겠네”
더 가까워진
우리 사이
♧ 추사의 진눈깨비 3 - 한희정
-동지 무렵
갈필 닮은 추녀 끝에
어둠이 힘을 모으네
낫에 잘린 수선화
그 향기도 품에 넣어
한순간
비백을 친다
동짓밤이 가볍다
♧ 시 할인 합니다 - 김영란
굳이 살건 없어도 에누리질 흥정질
습관처럼 손꼽으며 기다리는 오일장
넘치는 인심 속에서 골목은 더 환해진다
좌판 없이 맨 바닥에 비료포대 말아 꺾어
푸성귀 펼쳐 놓고 날 부르는 할망들
그 앞에 오종종 세운 봉지들은 무얼까
누런 박스 귀퉁이에 삐뚤빼뚤 작은 글씨
어디서부터 읽어야할까, 머뭇대는 그 사이
텃밭에 푸른 시들을 한 가득 내오신다
시금치시 고추시 호박시 상추시
시 할인 들어간다는, 할망의 푸른 시들
밤새 쓴 나의 시들은 꺼내지도 못했다
♧ 조천사람이우다 – 김정숙
은근 도드라지게
앞장서던
버릇이우다
바위에 올린 뿌리
뿌리를 내린 바위
해탈한
교래곶자왈에
옹이로 사는
저 얼굴
♧ 천제연(天帝淵) 폭포 - 오영호
한 번도 모자라서 3단으로 떨어지는 것은
세상이 요지경이라 눈 감고 있지 않고
너와 나 무딘 혼 깨워 바른 소리 하라는
칠선녀 멱을 감고 천상으로 올라가버린
전설의 맑은 물엔 질곡의 아픔도 고여
흐르는 은빛 물소리에 내 귀가 먹먹하다
구천 길 맴을 도는 원혼들* 신원하는
절벽 솔잎난이 향기 풀어 닦은 길에
호오익, 짹짹 찌르르 새소리가 서럽다
---
* 4․3때 중문에서 희생된 786명
* 제주작가회의 편 『계간 제주작가』 2023년 가을호에서
* 사진 : 가을 열매들. 차례로 천남성, 작살나무, 말오줌때, 참회나무, 누리장나무, 꾸지뽕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