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완)

김창집1 2025. 2. 25. 00:25

 

 

기억은 힘이 세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도대체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갈쳐만 달라고

소원한다고 소리쳐 외쳤건만 거긴 허공이었다

도대체 내 아이가 왜

내일모레면 온다던 내 아이가 왜

왜 죽어야만 했는지 조사해 달라고

머리 깎고 천막 치고 생업도 포기하고 내 아이로만 살았다

도대체 왜

 

내가 미안하다 내가 부족하다

도대체 내 아이를

그 누가 죽였는지 갈쳐만 달라고

촛불정부라고 믿었는데 그거 다 공수표였다

도대체 내 아이가 왜

은 내 아이가 잔잔한 날에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해명해 달라고

청와대로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오체투지로 청원해아 했다

도대체 왜

 

내가 못됐다 어미도 아니다

도대체 막 피어나던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갈쳐만 달라고

왜 죽어야만 했는지 조사해 달라고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해명해 달라고

7천 톤 세월호 침몰의 원인 무엇인지

출동한 해경이 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재난 컨트롤타워는 무엇 때문에 작동하지 않았는지

내가 환장한다 내가 죽였다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사참위도 특검도 촛불정권도 내내 기다리라고만 한다

8년이면 육탈이 되고 영혼이 맑아진다는데

도대체 내 아이는

이 어미를 떠나서 언제나 훨훨 날아갈 수 있는지

8년이면 이물이 나서 효자효손이도 돌아선다는데

도대체 내 아이는

이 어미로 살아서 저렇게 나부껴야만 하는지

안전한 나라가 되는 설분의 해원은 요원한 것인지

 

일말의 양심도 책임도 희망도 이렇게 묻히는 것인지

내 아이는 내 아이의 아이는 저 구럭에서 침잠되는 것인지

올해도 꽃이 피고 새 울고 나뭇가지 싹이 나고

올해도 아픈 4월이 오고 노란 물결이 일어나는데

그래도 기억은 힘이 세다고

기억은 어둠의 빛이라고 새로이 퍼 올리는 힘이라고

도대체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갈쳐만 달라고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규명해 달라고

 

 


 

4월의 기억

 

 

기다림 때문에

여린 속살 벌겋게 데인 적이 있었습니다

기다림 때문에

어리연꽃 노랗게 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기다림 때문에

온 나라가 질척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죽은 나무가 자라나는 4월의 기억

당연히 살아야 하는데 죽임을 당한 4월의 기억

선장과 승조원들이 승객들을 내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습니다

선주가 선박을 불법 개조하고 과적, 고박 등 안전 규칙을 어겼습니다

해수부와 해피아들이 안전 검사와 운행 관리를 끼리끼리 눈감았습니다

해경이 선내 진입도 탈출 지시도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수평선을 보면서 통곡했습니다

미안하다고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종이배를 접으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새날이 되어서 살아가겠다고

전국을 돌면서 맹세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사고, 말도 안 되는 구조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어처구니 때문에

생때같은 우리 아이들이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습니다

어처구니 때문에

바다만 봐도 뱃고동 소리만 들어도 숨이 자고 눈이 뒤집힙니다

어처구니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젠 눈물도 콧물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센 대통령도 검찰도 법원도 믿을 수 없습니다

안전한 나라, 안전한 사회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어처구니만 어둑서니만

하늘을 가리겠다고 진실을 넘보겠다고

아직도 세월호냐고 아직도 처벌 타령이냐고 빌빌거립니다

 

책임지는 윗선 하나 없는 4월의 기억

그래도 다시 촛불을 들고 다시 세월호를 외치는 4월의 기억

잊지 않겠다고 지켜주지 못한 그날을 기억하며 그날을 산다고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침묵은 또 다른 세월호를 지어냅니다

장막을 걷어내고 미궁에 빠진 그날의 진실을 두렵게 기립니다

새날의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안전한 세상을 위하여 두 주먹 불끈 쥐었습니다

 

 


 

오열

 

 

  지난 25, 세월호 특조위 방해혐의자 재판 결과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 징역 1년 집행유예 2, 조윤선 전 청와대정무수석 징역 1년 집행유예 2, 안종범 전 청와대경제수석 무죄, 김영식 전 해양수산부장관 징역 2년 집행유예 3, 윤학배 전 해양수산부자관 징역 1.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유, 무죄 여부를 떠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다만 피고인들의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고

  피고인들의 행위가 형법상 직권 남용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라고 부연하니

 

  지켜보던 유가족들 어이없어

  이게 법이냐고 이게 재판이냐고

  고작 이러자고 1년을 넘게 재판을 끌었느냐고

  설움에 북받쳐 목메어서

  과호흡으로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너희 자식도 죽어 보라고

  너희도 이런 냉대, 학대 당해 보다고

  고래고래 악을 써대며 오열하니

 

이렇게 오열하는 것은

피고인들이 이런저런 핑계로 줄줄이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이 억울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재판부가 안이하게 양형을 선고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재판장에 국민들의 발길이 뜸해져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어렵게 되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내내 구천을 떠돌까 서러워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까 그러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무능해서

우리가 무책임해서

우리가 죄인이라서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서

우리의 아이들로 살아가지 못해서

나중에 나중에

 

 

                          *최기종 시집 만나자(문학들, 2024)에서

                               * 사진 : 영종도 'Le Spac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