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의 시(12)
♧ 어떤 날 많이 아파본 적이 있기에
깜박 잊은 눈물이 난다
눈물을 나눈다, 하안 캡슐 속 물 한 방울을
바야흐로 꽃 피는 계절에 떠나
동두천 어느 곳에서
추억의 다방 들국화를 만나다
들국화 같은 주인 아낙네를 만나다
뜻밖의 인연 레트로 들국화 속에서
겨우내
먹은 것도 없는데 있는 힘 다 짜내
꽃 피우는 나무를
견디며 잉태된 무모한 용기로
흙을 밀치고 내미는 새싹을
게 중에
시든 것, 구부러진 것
가시를 드러낸 것도
잘 차려진 정원보다는
제자리 지킨 동네 담벼락 위로 간신히 솟은
한 송이에 눈길이 겹친다
어떤 것은 가시를 품고 자라며
어떤 날 살갗 위로 돋아낼 때
얼마나 아팠을까
깜박 잊혔던 눈물이 난다
눈물을 나눈다, 태어남에 가려진 그들의 아픔에
♧ 저리되면 되는 것을
의자를 바꾸기 위해
의자를 들고 문을 빠져 나가려 했다
의자 다리가 걸려 잘 빠지질 않는다
똑바른 모습으로도 뒤집힌 모양으로도
가로로도 세로로도
용을 쓰고 기를 써도 빠지지 않았다
자신을 내세우며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네 다리를 모두 모아 버티어낸다
그러다 두 다리를 먼저 내보내자 나머지도 잘 빠졌다
다리 하나가 없는 의지는 더 순순히 잘 빠져 나왔다
나하나 저리되면 되는 것을
♧ 눈물․1
언어를 빌어서 내뱉을 줄 모르는,
꾸밈없는 어리석음
낙제한 표현의 묶음들
한 마디 말도 못하는 눈길
저 혼자 흘러내리는 차가운 다짐
♧ 눈물․2
나에게
슬픔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눈물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그러다가 난
곧잘 눈물이 흐르곤 한다
그리 슬프지 않는데도,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 (월간문학출판부,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