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의 시(12)

김창집1 2025. 3. 2. 00:20

 

 

어떤 날 많이 아파본 적이 있기에

 

 

깜박 잊은 눈물이 난다

눈물을 나눈다, 하안 캡슐 속 물 한 방울을

 

바야흐로 꽃 피는 계절에 떠나

동두천 어느 곳에서

추억의 다방 들국화를 만나다

들국화 같은 주인 아낙네를 만나다

 

뜻밖의 인연 레트로 들국화 속에서

 

겨우내

먹은 것도 없는데 있는 힘 다 짜내

꽃 피우는 나무를

견디며 잉태된 무모한 용기로

흙을 밀치고 내미는 새싹을

 

게 중에

시든 것, 구부러진 것

가시를 드러낸 것도

 

잘 차려진 정원보다는

제자리 지킨 동네 담벼락 위로 간신히 솟은

한 송이에 눈길이 겹친다

 

어떤 것은 가시를 품고 자라며

어떤 날 살갗 위로 돋아낼 때

얼마나 아팠을까

 

깜박 잊혔던 눈물이 난다

눈물을 나눈다, 태어남에 가려진 그들의 아픔에

 

 


 

저리되면 되는 것을

 

 

의자를 바꾸기 위해

의자를 들고 문을 빠져 나가려 했다

의자 다리가 걸려 잘 빠지질 않는다

똑바른 모습으로도 뒤집힌 모양으로도

가로로도 세로로도

용을 쓰고 기를 써도 빠지지 않았다

자신을 내세우며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다

네 다리를 모두 모아 버티어낸다

그러다 두 다리를 먼저 내보내자 나머지도 잘 빠졌다

다리 하나가 없는 의지는 더 순순히 잘 빠져 나왔다

나하나 저리되면 되는 것을

 

 

 

눈물1

 

 

언어를 빌어서 내뱉을 줄 모르는,

 

꾸밈없는 어리석음

낙제한 표현의 묶음들

한 마디 말도 못하는 눈길

저 혼자 흘러내리는 차가운 다짐

 

 


 

눈물2

 

 

나에게

슬픔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눈물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그러다가 난

곧잘 눈물이 흐르곤 한다

그리 슬프지 않는데도,

 

 

                     *안상근 시집 하늘 반 나 반(월간문학출판부,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