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2월호의 시(9)

김창집1 2025. 3. 9. 00:02

 

 

명옥헌 랩소디 나병춘

 

 

명옥헌 인근에 사는 시인은 좋겠다

한창때의 명옥헌 연못가에는

허공에도 연못에도 자미성 별자리들이 떠서

시인의 노래 소릴 엿듣는다는데

 

별 뜨는 소리에 시인은 잠 못 이루고

밤새 재봉틀을 돌린다는데

새벽에 방바닥을 바라보면 수많은 붉고 노랗고 파아란

별자리들이 소곤 소곤거리며 시인을 바라본다는데

 

배롱 꽃들이 재봉를 속으로 달려와

꽃방석이 되고 꽃이불 되고

- 은은한 커튼도 걸려

배롱 꽃 환한 구름꽃 동산,

 

연못이나 언덕이나 하늘이나 그야말로

배롱 꽃 천국을 이루며

시인을 싣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날아가

정신 줄을 놔 버린다는데

 

이 소릴 전해 들은 나도 솔깃하여

그 천리향 만리향 향내도 조금 맡을까 하여

걸음아 달려라 달려 자미성 별자리까지 금세 달려가 보았는데

아뿔싸, 명옥헌 달 밝은 창가엔

예의 재봉틀 소리에

들들들 들들들 들락날락하는 밤새들 소리에

꽃들은 아직도 피고 지고 또 피고 져서

마당과 연못을 가득 채워서

참새 박새 곤줄박이 동고비들까지

자미성 별자릴 물고 명옥헌을 싣고 날아간다는데

 

여름날이면 명옥헌 안마당에는 은하의 별자리들까지

연못에 피어난 배롱나무 꽃과 새들을 만나러 모여든다는데

밤새도록 돌리는 재봉틀 소릴 따라

밀물처럼 썰물처럼 잔잔한 파도 소리에 섞여

배롱배롱 황홀한 춤사위 랩소디에

하늘의 천사들도 오르락내리락한다는데

이 광경에 어깨춤 추쎡거리던 명옥헌 대들보도 우지끈 뚝딱,

처마도 날아가고 지붕도 달무리 별무리 속으로 날아가 버려서

사람들은 아직도 명옥헌 환한 빈 마당에 모여서

하릴없이 노을 연못 속으로 꽃잎을 풀어 던진다는데

 

 


 

겨울 눈 이별 아침 남대희

 

 

겨울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차가운 또는 추운

이라고 말하는 그 겨울입니다

 

눈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새하얀 또는 펑펑

이라고 말하는 그 눈입니다

 

이별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아픈 또는 슬픈

이라고 말하는 그 이별입니다

 

아침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밝은 또는 희망찬

이라고 말하는 그 아침입니다

 

눈뜬 아침이

온통 백설 공화국입니다

펑펑 울고 난 다음 날입니다

 

 


 

앞에서 끌고 등 뒤에서 버티며 - 목경희

 

 

어둠의 밤, 광란의 소용돌이 시작되던 날

2024123, 현실의 악몽 속에

가슴 깊은 언어는 묵직한 돌이 되어

분노의 파도, 광화문과 여의도를 뒤덮고

풀뿌리 시민은 하나의 몸으로 일어섰다

 

앞장서 이끌고, 굳건히 뒤를 지켜 준 그대

뜨거운 시선, 하늘을 꿰뚫는 외침은

정의를 향한 촛불의 섬광

희망으로 타오르는 응원의 빛줄기

거리는 정의의 격랑으로 출렁거렸다

 

20241214,

서로의 손을 맞잡고 마음을 나누며

차가운 겨울을 녹이는 따스함 속에

눈물 어린 포옹으로 서로를 다독이며

승리의 꿈을 향하여

또다시 전진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박광영

 

 

장흥 수문마을

바닷가는 갈매기들의 은신처

 

겨울 햇볕 따순 날

녹슨 철대문 앞 길가에 앉아

할매 혼자 굴을 까고 있다

 

쉬지 않고 손을 놀리며

껍데기 속에 들어찬

만만찮은 생들을 꺼내 보인다

허연 속살의 시간이 드러나고 있다

 

단단한 해풍을 맞으며

묵은 시간의 파도가 왔다가 물러간다

외피 안의 씨알이 자랄 때까지

물속에 잠겨 숨죽인 평생

 

손가락 마디마디 일회용 밴드를

반지처럼 끼워 붙이고

속절없이 굴 까고 있다

 

삶의 기쁨이란 도통 없는 듯

그는 어기영차- 일어나

구부린 허리에 뒷짐을 진다

 

이윽고 저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곤

어헛- 하며 돌아선다

 

 


 

도토리 점심 백수인

 

 

도토리는 야생동물의 겨울 식량입니다.

가져가지 마세요!”

무등산 골짜기 오르다 팻말을 보았다

 

문득 목이 칵 막힌다

도토리묵 안주에 막걸리 사발 들이키던

나의 숨소리가 들린다

 

산골짜기 다람쥐가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던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를 잊었던가

 

 

                           *월간 우리2월호(통권 제44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