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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 동보 김길웅 '여든두 번째 계단에 서다'

김창집1 2023. 9. 20. 09:20

 

 

권두시

 

 

  늦깎이지만 글은 내 인생이야.

  방황에 닻을 내린 건 첫 수필집 내 마음 속의 부처님이었어. 무애(無碍)의 뜰을 거닐었지. ‘삶의 뒤안에 내리는 햇살에서 안정을 찾는 듯하더니 느티나무가 켜는 겨울 노래에서한때 곡쟁이처럼 울었어. ‘떠난 혹은 떠난 것들 속의 나로 이별을 연습하며 검정에서 더는 없다에선 현란한 색 뒤 남는 담백한 빛흑과 백을 터득했고, ‘모색 속으로에서 나이의 무게로 마음자리에서 흐트러진 삶의 대오를 정돈해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력내려놓다로 다디단 수필의 서정에 감루를 삼켰지.

 

  결핍에서 여백과 만나 시작한 내 시, ‘다시 살아나는 흔적은 아름답다에서 치기로 어머니 사랑을 재음미 했어. ‘긍정의 한 줄을 만지작거리다 내 시의 앳된 화자는 속에서 서로 화답하면서 좀 삐딱하게 해보자고 허공을 만지며 고등어를 굽다로 변용해 속울음으로 나를 뒤흔들었던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의 명징한 회상, ‘텅 빈 부재에서 존재론에 침몰했다가 둥글다로 원만 구족의 경계를 바라며 다다른 고즈넉한 평화, ‘너울 뒤, 바다 고요로 섬의 포구에 접안한 것이거든.

 

  수필 집 아홉, 시집 아홉, 스물에 안 차 미흡하지만, 만조에 남실거리는 열여덟 주낙배로 내 포구는 만선의 때를 갈구해.

  짙푸른 바다를 신뢰하는 나는, 바람 앞에도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투망으로 머잖아, 파닥거리는 날 것의 언어를 뜰채로 떠 가며 환호할 거야.

 

  혼자의 시간.

 

                                                                                              (2023. 5. 30.)

 

 

 

 

다시 살아나는 흔적은 아름답다

 

 

가뭇없이 지워졌다

다시 살아나는 기억 하나

눈을 빛내고 있다

마주 한 물푸레나무 이파리만한

아주 조막만한

유년의 기억 한 쪼가리

배곯아 긴긴 겨울밤을 어린아이

군침 삼키는 서슬에

돌아눕던 어머니

당신의 흔적은 아무 데도 없었는데

이순의 문턱을 넘어선 날

내 앞 허공에

길인 듯 강물인 듯 허공인 듯

산인 듯 하늘인 듯

당신이 만지다 간 흔적은

세상없이 아름다워라

바람이 지우다

지우다 아직도 남은.

 

 

  *東甫 김길웅 등단 30년 회고 여든두 번째 계단에 서다(정은출판,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