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시집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의 시(6)
♧ 먹는 동사
왜 이리 예쁜 거냐
서오누이 하는 짓이
엄지 검지 중지까지 합세해서 ᄌᆞ바 먹고
다섯 손가락 다 펴서 한 움큼 줴어 먹고
밥 밥 해도 밥은 국물 있어야 ᄌᆞᆷ앙 먹고
입맛 없을 땐 마농지 자리젓 ᄌᆞ창 먹고
짠짠한 감장된장 양념해서 ᄐᆞᆨᄐᆞᆨ ᄌᆞ가 먹고
숟가락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거려 먹고
짜고 달고 쓰고 신 건 물 담가 우려 먹고
먹음직한 건 입대서 덥석 그차 먹고
맛 좋은 국물은 사발째 호륵 드르싸고
풋콩 삶아주면 콩깍지 베르싸 먹고
어머니 눈엔 꿀 뚝뚝
다디 달던 그 시간
♧ 말은 낳아 제주로 보내랬다고
왓은 신의 공간이라며 탐낸다는 태국 말 중에
빌레왓 성굴왓 촐왓 담드리왓 무등이왓
만 팔천 신들이 고향 지명들이 남아서
무심코 튀어나와 쪽팔린다는 일본 말 중에
노가다는 똔똔이야 유도리 있게 왔다리 갔다리
막일은 본전치기야 여유부리며 왔다갔다
세상 애교스럽다는 프랑스 말 중에
가베또롱이 느보레 가젱ᄒᆞ민 아랑 졸디
가볍게 널 보러 갈 때 알아두면 좋은 데
받들어 모시는 만국공통이라는 말 중에
알바 핸 머니마니 인 시카코피자 쏘리 쏘리
조랑말 히잉 히히힝 말이 말 다 잡아먹는다고
♧ 말과의 이별 방식
게난 눈진벵인 진눈개비옌 ᄒᆞ고
쇠나기 ᄒᆞᆫ 주제 ᄒᆞ민 소나기 한 차례옌 ᄒᆞ고
놀 불민 태풍이옌 ᄒᆞ고
ᄀᆞ랑비 ᄀᆞ란 가랑비옌
말로 할 땐 끄덕끄덕 귀가 알아 듣는데
글로 써서 읽으라 하면 입이 버벅 버벅거려
그렇게 붉은 입술이 식어가는 거구나
♧ 작달비
내게 오시려거든
부득불 오시려거든
비비작작 비비작작
휘갈겨도 좋으니
한 줄의
시로 오소서
니체의 혼잣말처럼
♧ 빙세기를 아시나요
소리를 죽인 꽃잎이 방긋 벌어지는 동안
눈꼬리 입 꼬리가 마주 길어지는 동안
그 잠깐 부드러운 순도에 얼음벽이 녹는다
일천구백사십팔년 사월이십팔일 한수곶 살얼음 밤을 걸어내려 온 김달삼과 먼 생각 돌고 돌아온 김익렬이 만나서 세기의 담판을 짓는 구억국민학교에서도 여린 빙세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미소가 방긋방긋 터지는 것처럼 빙세기도 빙싹 빙싹 얼음에 싹을 낸다 빙싹도 자란다는 걸 섬사람들은 알았지만,
그렇게 그런 세기 살아낸 사람들이
너나없이 빙세기를 가지고 가 버렸다
아들 딸 재산 다 두고 친절한 미소도 두고
몇 세기 더 살아야 빙세기 돌아오나요
미소는 대놓고 돈이 되기도 하는데
골동품 빙세기라면 한 세상 살 것도 같은데
*김정숙 시집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 (한그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