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추晩啾의 해국海菊
사위어진 갈색 풀 틈바구니 사이
앙증스런 샛노란 미소
누가 가꿔주지 않아도
좀처럼 시들 수 없는 들꽃의 혼
아른아른 다가오는 국화 향기
조용히 번지는
순진한 미소는
그 옛날 산골소녀다운
애틋함이 서려
마른 잎 외로운 들녘에
호젓한 야성의 근성
내 안으로 계절을 비껴가는
샛노란 해국이 번져드네.

♧ 저물넠 창가에서
노을이 번지는 유리창엔
스쳐지나가는 옛 동무들
세월의 굴렁쇠가 돌고 도는 동안
단지 기억으로만 다가오는
그중 몇몇은 이미
은하 강을 건너간 벗들도 있다.
창밖에선 저물넠 풀벌레 소리가 마치
고요 속 번지는
애달픈 트롯의 화음처럼 녹아나고
무심코 떠오르는 앳되고 청순한
얼굴들은
어느새 머리에 은발을 인 채
어둠이 스미는 황혼을 낚고 있다.

♧ 정낭, 그 연민
정낭*이 사라진
시골 골목길 집
문간마다 닫아 건 솟을대문
쓸쓸한 사람처럼
더욱 외롭고
가장 아끼던 것 잃어버린
섭섭한 마음과도 같아
이제는 만나볼 수 없는
정겹던 정낭
아직까지도 너를 사랑하기에
아련한 그 시절의 너를 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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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낭 : 대문이 없는 집, 대문가에 가로로 걸쳐 방목 우마의 출입읕 막고 집사람들이 있고 없음을 알려주던 원통형 나무.

♧ 노년의 내 자화상
냇가를 지켜 오르는 은빛 연어처럼
정정하기만 했던 그 시절은 언제였던가,
엊그제 같던 푸르던 날들이
마른 풀잎처럼
작은 바람에도 휘둘리매
산과, 강, 바다, 들판……
나를 반겨줄 곳들이 점점 멀어져만 간다.
감성으로 푸르기만 했던 나의 안은
추수가 끝난 빈 가을 들판처럼
황량하기만 하다 그러나
지금 흰 머리 그 청년은
아직도 다소곳이 늘어만 가는
연륜에 휩싸인 없이 마음 속
꽃 덤불 자자한 자연을 누비고 있다.

♧ 산지항 서부두
작은 바람에도 물너울 일렁이는
호수 같은 항구 안
정박한 어선 갑판 위론
고단함이 엉킨 가파른 삶의 형제가
하늬바람에 소용돌이치고
선창에 가지런히 매인 닻줄에선
어로에 힘겨운 시간을 접은
깊은 휴식의 현상되고 있다.
어부의 고단한 삶의 위로인 양
차가움으로 살랑대는 물결 위
타원비행의 재갈매기 무리들
스스로 도취한 듯 노래와 유희로
늦가을 선창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김창화 시집 『섬의 아우성』 (춘강출판, 2025)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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