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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520

김항신 디카시집 '길을 묻다'의 시(6) ♧ 하오의 연정     출근하는 배 새벽을   향해 달린다   일터는 가족과 나를 잇는 곳   만선의 꿈, 일상에 젖어   ---  *사진 : 비양도 앞바다     ♧ 순정한 날 – 2   날개짓하다   쉬는 너의 모습을 본 순간   나에게 말하고 싶었어   순정한 날이라고     ♧ 당신을 위해서라면 – 1     판포면 어떻고   옹포면 어떠니   코로나 뚫고 가는   십 리 길, 마다할까     ♧ 선녀탕   그날의 언약식   하늘 길 열리다   날개짓 두 자녀 끼고 돌아온     ♧ 시 짓기   별처럼 이어지는   반딧불의 향연     독서 삼매경에 빠져보는   오늘   부지런히 가보자                   *김항신 디카시집 『길을 묻다』 (도서출판 실천, 2025)에서 2025. 4. 14.
'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시조(12) ♧ 그 섬에서 – 이창선    바다 위 테왁처럼 불룩이 떠 있는 섬   그 섬들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멋진 사람을 만나기 위함일까     ♧ 한라산에 취하다 – 임태진   소주에도 남다른 품격이 있다는 듯 한라산 목덜미에 선명한 태극 문양 애국심 빙자한 상술 태극기도 취하겠네   잊혀지는 역사처럼 낮아지는 알콜도수 소주 한 병 다 마셔도 간에 기별도 안가 기어이 불러들이네 21도 한라산소주   평소엔 잊었다가 취하면 떠 근는 4.3 소용돌이에 휩쓸려간 막내아들 목 놓아 불러보아도 대답 없는 한라산   화산섬 숨골마다 연중 솟는 그리움 한날한시 떼로 묻힌 원혼들 그 절규가 귓가에 생생한 사월 안 취하고 배기랴     ♧ 무인도 – 장영춘   사람도 섬이 되는 그런.. 2025. 4. 13.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1) ♧ 상강 – 박소원    내가 서울로 떠날 때, 할머니는   마을회관 앞 정류장까지 배웅 나오셨다   시월 북풍에 파랗게 익었던 하늘   김장배추 포기마다 푸릇푸릇 흡입되고   동쪽 하늘 낮달   무밭 두렁마다 사각사각 서리로 내린다       ♧ 바람의 세월 - 洪海里     뒤돌아보면 바람은 늘 한 쪽으로만 불었다   내가 하기보다 네가 하기를 바랐고 내가 해 주기보다 네가 해 주기만 원했다   그러다 보니 바람 부는 날 가루 팔러 다니며 바람을 잡아매려 하고 그림자를 잡으려 들기 일쑤였다   바람 따라 돛도 달고 바람 보고 침도 뱉으랬거늘 바람벽에 돌이나 붙이려 했으니 어찌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으랴   바람 안 부는 곳이 없고 바람 앞의 .. 2025. 4. 12.
김병택 시집 '아득한 상실'의 시(10) ♧ 설경놀이    얼어붙은 새벽의 이 눈길을 지나간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한층 더 은밀해진 숲길을 따라 스틱으로 공기를 차례로 누르며 앞으로 더 걸어간 지점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나무들이 엄숙하게 서 있었다   지나온 날을 대충 한데 묶어 만든 긴 이야기를 자세히 늘어놓는 것이 나무들의 한결같은 계획인 듯했지만   이런 이야기든, 저런 이야기든 사연을 오롯이 간직한 가슴에다 새 이야기를 볍씨 뿌리듯 흩뿌리면 세상사도 다시 싹을 기위 올릴 터였다   시간이 흘러도 설경놀이 온 사람들은 으 돋우느라 왁자지껄하기만 할 뿐 나무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막았다   설령, 비가 내리고 가지 위에 쌓인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해도 그것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머.. 2025. 4. 11.
김수열 시집 '날혼'의 시(4) ♧ 검등여*    추자섬 앞바다 바위 검어 검등여 만삭 해녀 배 타고 물질 가다 갑자기 산기 느껴   돌아가기엔 너무 멀어 검등여에 배 대고 동료 해녀들 손빌려 순산을 했다는데   검등여라 그랬는지 검지도 않은데 한평생 검둥이라는 별명 달고 살았다   ---*검등여 : 추자도 앞바다에 있는 여.     ♧ 저녁노을    몰래 깨 팔아 동네 처자 원피스 사준 건 결혼 전 일이고 밭 칠십 마지기 있다고 삥 쳐서 지금 할망 만나 머리 올리고 오십 년 넘게 살면서 빤스 한 장 손수건 한 장 받아본 적 없다며 잔솔가지 모질게 분질러 대는 할망한테, 이 몸이 귀한 선물인디 뭔 놈의 선물이 더 필요하냐며 저녁노을 모퉁이 돌아 스리슬쩍 사라지는 하르방 뒤통수에 붉으락푸르락 웨자기며 .. 2025. 4. 10.
월간 '우리詩' 3월호의 시(완) ♧ 추앙과 추락 사이 – 권순자    허공과 허공을 이은 막대에 발을 올린다 지렛대 끝 가벼운 몸이 가벼운 말을 따라 솟구친다 희미하고 어른거리는 자태 빛깔의 오색 찬란히 눈부시다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는 손바닥들 목소리는 안개 속을 굴러다니고 메아리치는       ♧ 탈출 풍경(흔들리는 풍경) - 지소영    너의 별을 수호하지 못했다 오만한 점령 황금이 불탄다   노란 엑기스 바다로 침투한다 오렌지로 이탈한 하늘은 녹아 투명 수정체를 위협하며 고양이 발톱처럼 긁어대고 있다   아름다웠던 캔바스에 어둠의 데칼코마니 화성과 지구는 스스로 본연의 역사를 지우고 있다 외면당한 수성의 푸른 눈물 퍼시픽 팰리세이즈*에는 검은 사랑의 표고들이 풍경을 바꾸고 있다   .. 2025.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