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063 이철수 시집 '아버지의 나무'의 시(3) ♧ 다시 살다 아버지는 스스로 굴리고 가던 하루가지구 헛돌며 멈추는 걸 바라본다다발성 골수종, 혈액암에 일부라는데항암치료 받아야 하는 병이라니아버지의 시선은 어두운 방 안에홀로 누워 있는 자신만 보인다무수한 다른 병은 모르겠는데암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크게 다가오나보다자신의 무게도 줄여달라 하소연하는못다 한 가지치기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기력 없는 몸에 달라붙은 아픔에스르르 번지는 시뻘건 죽음의 독독의 역할은 내 의지가 아닌 하늘의 뜻 금방 죽을 것 같더니 다시 살아지는구나! 신선한 새벽공기가 이마를 스친다자신이 선택한 삶의 무게 견디기로 한다감귤나무의 뒤치다꺼리 말고자신의 걸음 속도에 어울리게서두르지 말고, 적당히산책을 나선다 ♧ 갯녹음 해녀의 숨비소리 스미던 물길성게알은 작은 병 속에저녁 햇살처럼 담.. 2026. 9. 23. 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1) ♧ 역설 – 이상욱 사람들은하트를 날려매일사랑을 묶는다 사람들은 모른다하트조차허리를 죄면나비가 된다는 걸 ♧ 봄에는 – 정순영 봄에는연두색에 물든아이들을 따라가면빨강 노랑 파랑에 물들고 아이들을 따라나선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의 눈동자로 맑디맑은참 빛을 봅니다 ♧ 옵저버Observer 바다새라고 하지 않을게고유 명사 소금기 배인 눈 보폭을 띄우면리듬은 휘어지고 발꿈치를 접으면푸드득 등뼈가 곡예를 한다 갑판에 서서바람 의지하는 어깨뼈 사이로 견갑골을 오므린다빠른 아코디언 흠흠 사잇길을 낸다 두 줄 현악부리 흔드는 은빛 실시간 여행을 하고 허공의 율동에파수꾼처럼 기다림처럼봐이킹이 되었다 찰랑거리는 미역 냄새높낮이 푸르렀고물결 채운 여름 바람 곁에서 별리 부른 발자국의 관찰자였다은비늘 하늘 뜬다 ♧ 코다리 .. 2026. 9. 22. '한수풀문학' 2025 통권 제20호의 시(완) ♧ 보드게임 – 이상언 5세 6세 친구가 보드게임 하러왔다생각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 메트리스 게임을 펼쳤다 5세는 x축에 색깔 3개y축에 사물 3개6세는 4개 4개 처음엔 색깔만 맞추곤 사물은 이리 저리두 번째 사물만 맞추고 색깔은 갈팡질팡 한 번 더 생각한 5세 사물과 색깔을 깔맞춤했지만두 번 더 생각하라는 6세는 판을 엎어버렸다 ♧ 귀갓길 – 이종식 벗들과 술 한잔 마시고버스를 탔다깜빡 졸다가내려야 할 정류장은 지나가 버렸다어딘 줄도 모르겠다그냥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십오 년 전, 사위 집에 찾아오셨던 장인어른딸네 집에 오실 때면깜빡 졸다가 택시 타고 오셨다 그래도당신은 구십이 넘으신 나이셨고나는 이제 칠십 대 중반인데 ♧ 원담축제 – 차영옥 바람 따라 돌담을 넘는 웃음소리,바닷빛 파도 위에 춤.. 2026. 9. 21. 김원욱 시집 '누가 저 푸른 창을 깨트릴까'의 시(2) ♧ 풍문 풍문은 늘 그랬다 그녀가 떠나고 절룩이며 걸어가는 잠의 저편 웅숭깊은 할머니 우뚝서서 얼씨구절씨구 장단을 맞추는 동안 수런거리는 이승의 그림자, 언제부터인가 내 안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어둠이 외진 시궁창에서 파닥이다가 때론 어둑시니로 까마득한 시공을 건너오다가 밤새 사악한 피로 얼룩진 문밖 내쳐진 육신이 세파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한다는 소식 바람결에 듣던 날 불타오르는 하늘길 따라 성큼성큼 천계의 허한 내장 밑바닥까지 휩쓸고 간 제주들판 낮은 풀잎 도란도란 모여 사는 할머니 나라 그 잠은 깊은가요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을 향해 울부짖는 거룩한 비명만 남아서 몰락하는 잠의 이쪽 서늘한 어둠 건너오신 할머니 그늘에 묻힌 토산마을 갯가 구시렁거리는 소리, 금성산 구렁이 한 마리 똬리를 틀고 나.. 2026. 9. 20. 김경희 시집 '꽃은 꽃으로 답한다'의 시(3) ♧ 20분 휴대폰을 열어 번호를 눌렀다 어르신 성함은요?토요일엔 예약이 차 있어요일요일 오후 두 시 가능합니다 골목 돌아 다다른 4층 건물주차 구분선을 밟고 비스듬히 선자동차 한 대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휠체어를 타고 내려오시는 아버지초췌한 모습 가리던 주황색 중절모를이제는 쓰지 않는다 면회 시간은 20분입니다 쓸모없이 여쭙는 안부 인사 대신무릎 위 굵게 마디 잡힌 억센 손을 잡아본다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배뇨주머니삐죽 드러난 도뇨관을 따라똑똑 떨어지는 소변 방울에 맞춰 상담실의 벽시계가 흐른다 삶의 짐을 가득 얹고도가뿐한 표정을 짓던 얼굴에궂은일 도맡던 널따란 손등에여기저기 피어난 저승꽃바퀴 달린 의자로 내딛는 걸음이등 붙여 누운 침대 한 칸이전부인 이곳에선침묵은 그저 침묵일 뿐이다 온 길을 돌아엘리베이.. 2026. 9. 19. 고주희 시집 '야생화와 혁명가 사이'의 시(1) ♧ 시인의 말 부디, 제주 땅 모든 만물에 잠시 위로이기를 바랍니다. 2026년 여름 고주희 ♧ 새빌오름* 창밖으로 연두가 새초롬한 오름입니다올봄, 불을 놓은 목초지에 질긴 이름이 돋아납니다오름과 눈높이가 가까운 곳에서성녀聖女 빌힐다를 부릅니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았던 이름세례를 마친 여름날 퍼붓던 비, 흰 빗소리처럼 빌힐다 힐다 힐다울울한 녹음 밑을 지나온 우주의 시간 어디에도당신은 터럭 한 올 발견되지 않았는데요흰 미사보를 챙기고 돌아가는 저녁엔말씀 많던 할머니도 입을 굳게 닫고 먼 하.. 2026. 9. 18. 이전 1 2 3 4 ··· 1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