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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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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화 시집 '섬의 아우성'의 시(10) ♧ 만추晩啾의 해국海菊 사위어진 갈색 풀 틈바구니 사이앙증스런 샛노란 미소누가 가꿔주지 않아도좀처럼 시들 수 없는 들꽃의 혼 아른아른 다가오는 국화 향기조용히 번지는순진한 미소는그 옛날 산골소녀다운애틋함이 서려마른 잎 외로운 들녘에호젓한 야성의 근성내 안으로 계절을 비껴가는샛노란 해국이 번져드네. ♧ 저물넠 창가에서 노을이 번지는 유리창엔스쳐지나가는 옛 동무들 세월의 굴렁쇠가 돌고 도는 동안단지 기억으로만 다가오는그중 몇몇은 이미은하 강을 건너간 벗들도 있다. 창밖에선 저물넠 풀벌레 소리가 마치고요 속 번지는애달픈 트롯의 화음처럼 녹아나고 무심코 떠오르는 앳되고 청순한얼굴들은어느새 머리에 은발을 인 채어둠이 스미는 황혼을 낚고 있다. ♧ 정낭, 그 연민 정낭*이 사라진시골 골목길 집문간마다 닫아 건 .. 2026. 9. 2.
고정국 단시조집 '꽃은 제 형상보다 슬픈 소리를 감추고 있다'의 시(6) ♧ 아내 '사쿠라' '공산명월''솔광'에서 '비오동‘까지 '오광' 패 손에 들고도 '광박' 쓰고 돌아온 아침 울면서 웃음을 보여준내 아내가더슬퍼 ♧ 그리운 귀뚜라미 짜릿짜릿 초아흐레 열아홉 살 달님이 뜨면 달빛에 감전된 풀들이반금속성 소리로 울었고 잠결에 파고 들어와갈비뼈 하나를조르던녀석 ♧ 쇠별꽃 북두칠성 꼬리쯤에서저만 슬쩍 떨어져 나와 연에 한 번 못해보고다시 별이 되었다는… 아 그때 칠층 병실에치아 곱던너였지? ♧ 수국 꽃길에서 얼핏 너를 보니 울던 얼굴이었구나 울지 않음 어쩌겠니,소리 내어 크게 울자 퍼질러 펑펑 울 때가살아행복했잖아 ♧ 노란 손 폐농의 텃밭 구석 겨울 넘긴 호박덩이 치매노파 저승길에 두고 떠난 보따리를 샛노란 봄볕이 내려와 해쳐보고 있었어 ♧ 효도의 때와 장소가 어버이 .. 2026. 9. 1.
고성기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의 시(18) ♧ 밤하늘 겨울밤 별을 빛내고오돌오돌 떨면서자취 없이 사라질 새벽이 가까워도밤하늘별이 부러워빨리 밝지 않는다 ♧ 비 오는 날 엘가의 ‘사랑의 인사'비 오는 날 아침 듣는다실핏줄까지 적시는 첼로의 가는 떨림빗방울언제 그쳤나심장엔 그냥 내리네 ♧ 혼자 있으면 외로워야 보인다들꽃의 향기까지 혼자 있어야 들린다바람의 속삭임도 그리움그것까지 잊어야그믐달도 벗이 된다 ♧ 초복 전야初伏前夜 더위야 물렀거라큰소리쳐 보지만오늘 납작 엎드렸다초복중복말복 더위가엎드려 공격하는지내가 엎드려 기죽은 건지 ♧ 다시 봄 대동강 물 녹으니개구리 튀어나왔다이보다가까이 온 봄어떻게 그려야 할까홍매화벌써 눈치채바람 난장 피우는 걸 *고성기 시집 『섬은 보고 싶을 때 더 짜다』 (그림과책, 2025).. 2026. 8. 31.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3) ♧ SNS에서 만나는 세상 – 이학균 편지밖에 없었더라면전화뿐이었더라면문을 나서는 순간수첩은 적막한 고요를 헤매고 있겠지 언제든 닿을 수 있는딱 그만큼의 거리에 있는우체국에 가지 않아도애써 말을 하지 않아도 관계의 이름이 세월을 담고가끔 그때의 직급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잊어도 좋을 사람은 잊어도 되고잊혀지는 사람은 잊혀지고기억하고픈 사람은 기억되고그의 기억에 남고 싶으면 남겨지는 SNS는 과거와 현재의 인연을 엮는 거미줄이다. ♧ 사랑의 크기 - 이화인 오백 년을 사는 그린란드 상어는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작은 벌레를제 눈에 품고 사는 죄로죽는 날까지 먼눈으로 산다 나를 가슴속에 품고 사랑한 죄로생인손 앓는 아픔처럼그대는 한평생 남모를 가슴앓이하며눈먼 장님으로 산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영롱한 진주를.. 2026. 8. 30.
이철수 시집 '아버지의 나무'의 시(2) ♧ 봄을 기다리는 이유 소한의 언덕을 넘는 흰 새의 발걸음솔잎 가시에 찔려 멈칫거린다드문드문 빈 하늘 서성이는 성긴 눈가뭇없이 사라져 바람 소리 애처롭다 처마 밑에 돋아나던 고드름겨울왕국 비밀의 열쇠 눈꽃눈 덮인 환한 세상 간절한데그래도 봄이 빨리 왔으면… 피에 찬 서리 내려서인지피가 일어서 잘 돌지 않는지추워서 뱅뱅 어지럽다고항암 주사 맞는 아버지 추위쯤 껴안고 품을 수 있지만아버지 피가 일지 않게아버지 심장이 식지 않게따뜻한 봄이 기다려진다 ♧ 아버지의 나무 과수원 나무와 마음 섞는 일쉬운 일은 아니지아버지는 알고 있을까 깨물면 다 아픈 손가락저마다 다른 그늘과 상처햇살 더 차지하려기를 세우는 가지들 보이지 않는 말들이잎맥을 파고들면뿌리 움츠리고속부터 말라가는 나무들 시름 깊은 녀석들말없이 껴안는 .. 2026. 8. 29.
계간 '제주작가' 2026년 여름호의 시(4) ♧ 떠오르길 - 홍경희 -김녕 ‧ 1 바다는 번번이 지우려 달려들었고파도가 잠시 물러서는 간조의 틈마다해녀들은 끝내 길 하나를 얹었다 검은 빌레의 마른 등뼈 위맨발의 통증이 눌어붙고바다는 겨우 건널 수 있는 문장이 되었다 누군가는 묻는다.‘떠오르는 길’이 아니라왜 '떠오르길'이냐고 파도는 자꾸 문장의 어미를 지웠고바다는 늘 몇 마디씩젖은 채 남겨두었으나 해녀들은 그 비어 있는 자리를제 생으로도 메우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어미 한 사람,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름 하나쯤물 아래 닫히지 않는 서랍 속에 넣어둔 채평생을 서성이는 ‘는' 하나쯤 사라진 이름은오히려 더 오래 출렁인다 떠오르길간조를 따라현무암 사이 잠겨 있던 길이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끼처럼 번진 파래는바다가 미처 거두지 못한 얇은 체온.. 2026.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