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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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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숙 시집 '꿈을 나눠 먹어요'의 시(9) ♧ 이주민 꾸잉은, 그러니까 임대아파트 입주민이자 이주민이다 한때 유행처럼 몸에 들인 흥건한 노동 국경을 넘어온 떠도는 신발이다 고기 굽는 냄새 자욱한 골목식당을 그을음으로 전전하는 그녀 소쿠리에 나물을 다듬다가도 딸국질 같은 우리말을 더듬으며 서빙을 한다 머리를 묶은 검은 눈동자가 돌아갈 곳을 잃은 얼룩말을 꺼내 입는다 도심 언저리는 그녀가 입주하지 못한 광활한 세렝게티 뿔, 발톱, 늘어진 갈기를 감추고 유유히 활보하는 사자의 발자국들 속에서 이방인이라는 꼬리는 가지런한 먹이, 야생은 사람들이 펼쳐내는 몸뚱이 그녀의 얼굴이 좀처럼 웃지 않는 줄무늬를 벗고 몸피 불린 하루를 끌고 저문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사파리 오늘도 안녕, 두고온 하늘을 추스르며 흔들리는 빗줄기가 비음 섞인 콧소리를 내며 눈시울.. 2026. 10. 27.
김충림 시집 '포구(浦口)'의 시(12) ♧ 첫사랑 열여덟 첫사랑은풋과일처럼싱그러운 향기를 풍기지. 못보면 애가 타서목이 마르고만나면 할 말 없어목이 마르니, 지겹게 투정 부리고늘 들뜬 마음은숨길 줄도 모르네! 그래서 열여덟 첫사랑은철모르는 아이 같은순진한 사랑. ♧ 산유화 고내봉 솔숲하안 눈 수북이 내린보광사 오솔길 산새 발자국꽃가지 그려놓고,노루 가족 발자국꽃송이 피위냈네. 나뭇가지 사이로아침 햇살 그림자 드리우고흐르는 산바람에꽃송이가 흔들리네. 오름 오르는나그네 눈동자에어리는 웃음꽃. ♧ 장독대 고요한 마당 한편에둥글게 앉은 장독들,햇살을 담고 달빛을 머금어세월의 맛을 익혀 간다. 봄이면 바람 따라새싹의 향기를 품고여름이면 장맛비와 함께풍요로운 맛을 더하며가을엔 들녘의 횡금빛과 어우러져깊은 풍미를 가꾸고겨울엔 눈꽃 속에서도온기를 잃지.. 2026. 10. 26.
허영선 시집 '법 아닌 법 앞에서'의 시(6) ♧ 어느 재판장이 말하기를 농사짓다 낚싯줄 잡았다가그렇게 갇혔습니까세상에법의 칼날은 때로 무도하여서혹시 부딪힌다면차갑게 돌아서야 합니다하늘에서 몰라볼 수 있을까 염려하지 마세요이미 알아봤을 겁니다연좌제란 어느 법에도 없는해괴한 제도 때문에 이렇게살아왔군요 사람의 기억은 질긴 탯줄 같은 것이어서사슬처럼 이어서 떠난 그들은이미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니 죄 없으니부디 머리 숙이지 마세요부끄러운 일이란 없습니다버디고 버틴 삶이미 서로 부둥켜안고 만났습니다 허니, 바랍니다이젠 울음의 집에서 나오시기를 ♧ 돌이킬 수 없는 반쪽 -수인번호 7246 김경인에게* 월평마을 '수경 쌀 상회' 앞녹나무 늘어진 늙은 올레엔수인번호 7246 숫자가 떠돈다한밤에도 죽순처럼 올라오는진초록 양하 돌담 아래웅크린 숫자흙바람벽 숭숭 오.. 2026. 10. 25.
강선종 시집 '바람의 길'의 시(4) ♧ 망부석 꼭 한번이루고 싶은 소망을 붙잡고막연한 기대 속에오랜 세월 기다리다가선 채로 굳어버린 망부석 임이 보시기엔 늘 부족해도존재에 대한 감사와핏빛 그리움으로충전된 우람한 자태 어둠을 몰아낼 빛이 그리워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빛을 바라보며기도의 향기를 피워 올리는 망부석 ♧ 독수리 구름도 쉬어가는저 높은 산 위 바위가내가 설 자리인가 봐 그곳에 가기 위해오늘도 난창공을 가르며바람의 길을 낸다 오로지나의 세계를 펼치고 싶은 맘 하나로비상을 꿈꾼다 하늘길이 멀다 해도거친 비바람이 막아서도나는 날아오르리 내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아주 멀-리 날아오르리 ♧ 수탉 내겐 숙명처럼주어진 사명이 하나 있다.그것은 새벽을 깨우는 것 오늘도 난내 임무를 완수하고자목 놓아 새벽을 깨운다 삼라만상 모두 일어나어둠.. 2026. 10. 24.
강은미 시집 '흐린 날의 춤'의 시(12) ♧ 사랑의 일 어머니 다리에는 동굴 서너 개가 파였어요지금쯤 동굴의 입을 열면 사리 몇 개나올지도 몰라요사리는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다리에서 나오는 거래요 요ᄉᆞᆺ설 때부터 조팟디서 몽그라진 다린디이제두룩 ᄌᆞᆫ디크냐?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틀니를 빼서 입을 닫아버려요동굴에서 빠져나온 바닷물이썰물 밀물 왔다 간 자리에뼈마디가 우둑우둑 생겨나죠 조 ᄇᆞᆯ릴 땐가?조코구리 ᄐᆞᆮ을 땐가머리 끄스럼쪄머리 끄스렁 햄쪄 머리가 아프다며다리를 동여매는 이유는 뭘까요? 아직 발견되지 못한 지네가어머니의 다리를 지나가나 봐요밤낮을 잊어가는 그녀의 귓가에는정자야 라고 부르는 외마디가자울락자울락 넘어진대요 조 ᄇᆞᆯ릴 땐가?조코구리 ᄐᆞᆮ을 땐가 휘파람 소리 같은 기억은자꾸 흩어지고 있어요달빛 아래 술잔을 기울이며.. 2026. 10. 23.
박흥순 시집 '토끼는 발걸음을 세지 않는다'의 시(10) ♧ 장도리 나는 불꽃 속에서 태어났다.화로에 풀무질로 쇳덩이를 넣고 달구면,시꺼먼 쇳덩어리는 시뻘건 불의 기운을 먹고,다시 태어난다.머리통은 묵직한 쇠뭉치꼬리는 사막 전갈의 이빨이다. 쇠뭉치로 가차 없이 내리질 때,벽에 박히면 무덤이 되고 허공에 흩어지면꽃잎처럼 스러진다.세상 무서울 것 없는 나는 절대자. 나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그 사람의 허리춤에 매달린 채.손길이 뻗는 순간 망설임 없이 내리쳐,뚝-딱- 깊숙이 꿈쩍 못하게 박는다.제자리 잘못 간 못은 전갈의 이빨이 날카롭게 튀어나와기세 좋게 뽑아내니 그 힘 앞에선 누구도 버티지 못한다. 첫 번째 못질은 소나무의 껍질을 가르며과거의 옹이를 파헤쳤다.'이것이 진실이다'두 번째 못질은 대나무의 마디를 꿰뚫어허리를 꺾어놓았다.'이것이 정의다’ 그러나 진실.. 2026.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