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의 줄탁소리 – 정예실
아직은 차가운 흙 속에서
작은 숨들이 서로를 두드린다
안에서 쪼는 소리, 줄啐
밖에서 기다리는 손길, 탁啄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턱에서
생명은 그렇게 서로를 부른다
껍질은 단단하고
시간은 더디지만
그 안의 떨림은 이미 봄이다
어미의 따뜻한 눈빛처럼
햇살은 조용히 등을 밀어주고
바람은 이름 모를 응원을 건넨다
톡, 톡---
마침내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
깨지는 것은 껍데기만이 아니라
두려움과 기다림의 벽
그 틈 사이로
연둣빛 첫 울음이 번진다
줄과 탁이 만나는 자리,
그곳에서 봄은 태어난다

♧ 감나무 아래 - 강상돈
초가을 햇살 머금고 잎맥마다 숨이 차고
지난 비에 가지 꺾여 상처 깊이 남았어도
저마다 붉은 빛 품어
서로의 빛 나눈다
바람결에 서걱이며 오래된 노래 흘러
먼 땅에 뿌리 둔 기억을 불러내어
가지 끝 굳은 살결에
새순 품어 안는다
겨울 앞둔 감들은 달빛처럼 익어간다
풋감의 설익은 꿈에 단맛이 스며 나와
한집의 숨 잇는 듯이
생의 및 이어준다

♧ 울릉도에 들다 – 오영호
동해 바닷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페리는 날 태우고 너울 파도 넘어
도동항 품에 안기자 춤을 추는 갈매기들
가파른 바위벽에 발 뻗은 향나무들
흐린 눈이 번쩍 설렘이 솟구칠 때
서서히 산문을 열고 손짓하는 성인봉
꼬불꼬불 가파르지 않은 길만 있겠냐만
내 삶이 늘 그렇듯 덜컹거리는 길을 따라
울릉도 푸른 속울음 귀에 담아 가고 싶다

♧ 무꽃 – 이창선
풀냄새 풍기듯이
들려온 사랑노래
한겨울 눈속 깊이
파묻힌 청무같아
늦봄엔 담자색이나
흰 꽃이 눈처럼 예뻐
*혜향문학회 간 『혜향문학』 2026년 상반기호(통권 제2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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