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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혜향문학' 2026년 상반기호의 시(완)

by 김창집1 2026. 9. 16.

 

♧ 봄의 줄탁소리 – 정예실

 

아직은 차가운 흙 속에서

작은 숨들이 서로를 두드린다

안에서 쪼는 소리, 줄啐

밖에서 기다리는 손길, 탁啄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턱에서

생명은 그렇게 서로를 부른다

껍질은 단단하고

시간은 더디지만

그 안의 떨림은 이미 봄이다

어미의 따뜻한 눈빛처럼

햇살은 조용히 등을 밀어주고

바람은 이름 모를 응원을 건넨다

톡, 톡---

마침내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

깨지는 것은 껍데기만이 아니라

두려움과 기다림의 벽

그 틈 사이로

연둣빛 첫 울음이 번진다

줄과 탁이 만나는 자리,

그곳에서 봄은 태어난다

 

 

♧ 감나무 아래 - 강상돈

 

초가을 햇살 머금고 잎맥마다 숨이 차고

지난 비에 가지 꺾여 상처 깊이 남았어도

저마다 붉은 빛 품어

서로의 빛 나눈다

 

바람결에 서걱이며 오래된 노래 흘러

먼 땅에 뿌리 둔 기억을 불러내어

가지 끝 굳은 살결에

새순 품어 안는다

 

겨울 앞둔 감들은 달빛처럼 익어간다

풋감의 설익은 꿈에 단맛이 스며 나와

한집의 숨 잇는 듯이

생의 및 이어준다

 

 

♧ 울릉도에 들다 – 오영호

 

동해 바닷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페리는 날 태우고 너울 파도 넘어

도동항 품에 안기자 춤을 추는 갈매기들

 

가파른 바위벽에 발 뻗은 향나무들

흐린 눈이 번쩍 설렘이 솟구칠 때

서서히 산문을 열고 손짓하는 성인봉

 

꼬불꼬불 가파르지 않은 길만 있겠냐만

내 삶이 늘 그렇듯 덜컹거리는 길을 따라

울릉도 푸른 속울음 귀에 담아 가고 싶다

 

 

♧ 무꽃 – 이창선

 

풀냄새 풍기듯이

들려온 사랑노래

 

한겨울 눈속 깊이

파묻힌 청무같아

 

늦봄엔 담자색이나

흰 꽃이 눈처럼 예뻐

 

 

                *혜향문학회 간 『혜향문학』 2026년 상반기호(통권 제26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