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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강연익 세 번째 시집 '노을을 붙잡고'의 시(19)

by 김창집1 2026. 9. 28.

 

♧ 고향 생각

 

  유년 가난의 고통 속에 설움 많은 고향에는

  친구들이 살고 있다

  고향을 떠나 오던 날 다시는 찾지 않으리라고

  떠났던 고향이지만 나이가 쌓일수록 고향을 향해 한참을 머뭇거리며 유년의 잔상을 찾아 나선다

  여기 와서야 내 젊은 시절이 있고 지금은 다 흩어져 살고 있지만 한 식구들이 보이고 그리움을 찾아 필름처럼 스쳐 지나는 기억을 더듬노라면    까닭 없이 눈시울이 붉어진다

  저녁노을 지는 시간이면 초가삼간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안개처럼 시야를 덮는 고향 저녁 풍경

  보이는 곳마다 유년의 아픔과 슬픔과 즐거움이 있다

  내 삶의 여정에 진한 그리움들이 넉넉하게 채워져

  참새의 가슴처럼 오그라드는 심장을 뛰게 한다.

 

 

♧ 나목

 

하나둘씩 떨어져 나간 자리

허물의 누더기를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모든 것을 떠나 보낸 빈자리

벌거벗고 다가올 자유를 향해

겨울을 생각하며 상처를 꿰매고 있다

 

고통의 늪을 헤매던 날들 보내고

여유를 가지려고 준비를 하며

다시 맞을 풍성했던 때를 생각한다

 

떠나 보냄은 자연의 이치인 걸

빈 가지에 외로움을 모르라만

만남을 위한 진통인 걸 어찌하라

 

 

♧ 붉은오름

 

보이지도 않는 700여 년 기억조차 희미해진 항파두리

내성은 돌로 외성은 흙으로 쌓고

해안에는 돌로 쌓은 환해장성도 있다

 

5월의 찔레꽃만 그날을 기억하며 피어나지만

한많은 신명들 바람에 구천을 떠돌다 흩어지며

오랜 시간 토성 주위를 맴돌다 멈춘다

 

짙은 안개가 시간을 덮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던 전쟁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애국민의 전쟁터 그 이름 붉은오름이다

 

나라를 구하려는 김통정 장군과 민병들 패하고

최후의 비극을 이끈 오름엔

아직도 붉게 물든 피의 자국들

붉은 진달래꽃으로 피어 침묵을 깨운다.

 

 

♧ 길

 

길은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길은 찾으려는 자에게만 나타나고

길은 찾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길에서 즐기는 삶이 있으면

길에서 방황하고 헤매는 삶도 있으며

길에서 찾아 만들어가는 도전도 있다

 

길을 찾는 이는 이정표를 보고

길을 가는 이는 어디인지 터득하지만

길을 걸어온 발자국은 보지 못한다

 

길은 누구도 같이 갈 수 없고

길에서 가다 폭풍우에 길 잃을 때는

길은 별이 안내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 한 조각 구름인 걸

 

태고의 향기 어린 이곳

눈을 뜨면 마주하는 인연의 곳

생사의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

 

세월이 잠깐 쉬는 시간에

헐린 상처 자국들 메워

조각난 삶에 파편들을 맞추어본다

 

잘 모르는 나의 빛깔을 생각하며

두렵던 일들 바람에 태워 보내고

이제 다 내려놓고 가벼이 날고 싶다

 

자연에 빚지고 살면서 아직껏

마음의 경작지에 씨앗 하나 심지 못하고

후회해 본들 한 조각 뜬구름인 걸

 

 

♧ 강연익 세 번째 시집 『노을을 붙잡고』 (그림과책, 202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