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 하나 될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사람들
아시안 게임 메달 앞에선 하나가 될까요?
그것만 해도 어디냐고 하는데,
옛날 같진 못해도 추석이 오늘 남았네요.
요즘 남의 권리는 생각 않고 내 권리만 주장하더니
학교마저 붕괴되어가는 세태(世態)가 걱정이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서로 걱정하고 도와주던 이웃사촌
결혼하는 거, 아이 낳는 거 마음대로라 하는 세상에
어디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이 통할까요?
흉흉한 세상일수록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데,
이 나라를 앞에서 이끌어 나가겠다던 사람들은
이전투구에다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획책하며,
고물가에 다 찌그러진 민생은 내 팽개치고
헤게모니 쟁탈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국이 그럴지라도, 올 추석에 우리들은
바쁘다고 아니면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다른 사람들이야 죽이 되든 말든
외면하며 살고 있진 않은지
조용히 되새겨보며,
이웃을 보살피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 추석 - 洪海里
차서 기울고
기울었다 다시 차면서
그대가
삶의 문턱을 넘어서기까지
천년도 더 걸렸다
치렁한 치맛자락
물 머금은 저고리 안섶
하늘하늘 하늘로
날아오르는
날개옷 스치는 소리
은분을 발라 치장한, 그대의
환한 얼굴
발그레한 볼
연연한 그리움으로
가슴에 금물이 드는
이 지상에서 그대를 본다
달아,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 한가위 풍경 - (宵火)고은영
플라타너스 나무는 살아 있는 내내
몇 천 번의 수피를 벗을까
나이만큼 벗어내는 걸까
높아진 담청색 하늘에 구름 들은
흩어졌다 다시 모인다
만월의 밤이면 소곤거림에
점점 무르익어 비워내야 할 것이
무엇임을 아는 자연의 소리
고통을 지나온 걸음은
비로소 행복에 근접하는 것이다
거기 말할 수 없는 진실로 엎딘 풍경도
마지막 고단한 열매를 달고 고열로 헉헉거리다
한가위 보름달에 그리움을 풀어내며
지극히 평화롭고 고요한 종을 울릴 것이다
♧ 또 한 번의 가을 - 박인걸
한가위 들녘에는
못다 핀 꽃들이 일제히 일어선다.
쑥부쟁이 용담초 산국 꽃 향유 투구꽃
찬바람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음을
예리한 촉으로 알아차려서다.
그래선지 길가에 늘어선 코스모스는
가을 하늘아래 유난히 애잔하다.
이제 곧 나뭇잎마저 붉은 꽃이 되면
지나치게 익어가는 나는
작년 보다 더 여윈 뺨에 서럽고
시월 찬 서리 무참히 짓밟을 때면
그 곱던 흰 국화마저 스러지면 어쩌나
아! 이렇게 또 한 번의 가을이
시간의 징검다리를 건너뛰면
늦게 핀 꽃들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지랑이 붉은 꽃 피는 봄날을
맞이하리라는 나의 꿈은
바람에 가물거리는 등잔불이 되겠지.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저녁노을이
오늘은 더더욱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