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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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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3)와 애기도라지

by 김창집1 2023. 9. 30.

 

 

접는다는 것 여연

 

 

종이접기 하듯 마음을 접는다

네모난 종이 접어 둥근 공 만들 듯

겹 접고 홑 접어 당신을 소환한다

어느 쪽으로 접으면 당신이 될까

 

떠난 당신을 접으면 다른 당신이 올까

줄장미 늘어지던 오월 담장을 짚고

비틀거리다가 삶을 접었던 사람

머리에서도 장미가 붉게 피었지

 

삶을 접으면 무엇이 될까

나를 바라보던 눈을 접어

다른 생을 바라보던 당신도

종이처럼 접으면 둥글게 돌아올까

 

접는다는 것은 간절하다는 것

마음을 접는다는 것은 잊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뜨겁게 타오르고 싶다는 것이다

 

 

 

 

적요 정재원

 

 

나비 한 마리가

천일홍 마를 꽃 위에 팔랑거린다

 

햇살이 눈을 덥혀 놓은 것 밖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재의 순간, 흙에 묻어둔 얼굴을 누구도 찾지 않는다

 

꽃 한 가지 흔들릴 때 당신의 젖에 맺히던 눈물

 

오늘이 하루

더 지나면 내 이름도 없을 것 같다

 

 

 

 

다대포 해안을 걸어 보라 박구미

 

 

누워 있는 수많은 얼룩말,

말들의 잔등을 파도가 쓰다듬고 있다

 

아침에 딸아이와 다투고

등교하는 등을 끝내 다독여 주지 못했던

발목까지 시린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어미의, 그 어미처럼

 

밀물 들고 썰물 지는

수천, 수만 년 세월에도

한결같은 저,

바다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불을 끄자 나는 없습니다 - 홍혜향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

검은 옷을 입고 누워 있습니다

 

불을 끄자 나는 없습니다

꽃나무 그림자가 유령처럼 흔들립니다

 

점심시간 그녀가 내민 보험 약관을 든 채

먹은 조개 미역국이

목에 걸린 말처럼 명치에 남아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앉았던 식당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자리로 바뀌어 있습니다

 

급하게 밥을 먹은 속도가 사건이 됩니다

급히 먹는 사람과 마주 앉으면 나도 급해집니다

 

명치에 밥이 걸리니

사방이 걸리는 것 투성이입니다

 

창문이 눈에 걸리고

문이 걸리고

옷이 걸리고

잠이 걸립니다

 

천정엔 검은 형광등

의심 없이 사인한 이름만 떠있습니다

 

검은 옷을 입고 같이 누울 친구를 찾습니다

그는 내가 느리다는 것을 압니다

 

잠은 식후 마신 아메리카노

깜박깜박

밤이 뒤척이는 내 심장소리에 눈을 맞춥니다

 

 

 

 

실패 - 이화인

 

 

작은 돌멩이에 걸려 넘어져도

큰 바위에 넘어지진 않는다

 

낙담하지 마라

 

사는 일이

기쁨과 슬픔의 연속이듯

성공과 실패도 연달아 찾아온다

 

기쁨은 아껴두고

실패는 잘 보듬어 주어라

 

신은 사랑하는 만큼만

성공과 실패를 주신다

 

실패 많은 놈이 마지막 웃는다

 

 

 

                 * 월간 우리20239월호(통권 4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