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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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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산림문학' 가을호의 시(2)

by 김창집1 2023. 10. 1.

 

 

세모 네모 오 엑스 김혜천

 

 

초록색 연필로

 

세모 네모라고 쓰면

 

안개 피어오르는 프랑크푸르트의 창이 열리고

 

정령들이 나무와 나무 사이

 

환한 빛을 드리워 아침을 깨운다

 

서로를 축복하는 의식의 춤을 추면서

 

바람은 고요히 잠들고

 

태풍으로 찢긴 상처에 새 살이 돋는다

 

수정과 보완으로 윤기 흐르는 숲에는

 

작은 꽃들과 벌레들과 웃음들이

 

아이들과 함께 뒤논다

 

붉은색 연필로

 

오 엑스라고 쓰면

 

바람의 갈옷을 입은 타클라마칸 열사들이 달려와

 

물기란 물기는 모두 날려 초원은 사막이 되고

 

물 긷는 여인들의 타들어 가는 갈증과

 

낙타의 관절이 힘없이 꺾인다

 

이족과 저쪽을 가르고

 

맞다 틀리다로 금속성 기둥을 세워

 

총칼 부딪히는 소리 고막을 찢는다

 

대립의 역사로 사막에 뒹구는 주검의 잔해들

 

 

 

 

수목원에서 - 임술랑

 

 

당신이 소나무 밑에 있길래

소나무인 줄 알았어요

당신이 주목나무 곁을 지나시길래

푸르고 꼿꼿한 주목朱木인 줄 알았어요

이 모습

저 모습은 달라도

언재나 나무이신 당신

늘 난초蘭草 향기 코끝에 걸리는

감미로운 당신입니다

당신은 나무입니다

 

 

 

 

나무 정재령

 

 

이 산에서 제일 곧다

칭찬을 받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나는 살으리

 

나이 들어 등이 굽고

손이 곱아도

한 그루 곧게 서듯

나는 서리라

 

지나온 삶 희미하여

눈을 비벼도

푸른 잎 매달고서

가지 뻗으리

 

곧고 곧은 마음으로

구부정 않고

아픈 세월 보듬어

열매 맺으리

 

 

 

 

숲은 태풍 이겼다 차옥혜

 

 

강력한 태풍 몰려와

가로수들

몸통 부러지고

뿌리 뽑혀 쓰러졌지만

숲의 나무들은

우듬지 가지들

맞부딪히며 흔들려

바람의 충격

분산시켜 나눈 탓에

뿌리 진동 줄여주어

뿌리 지켜 살아남았다

혼자 우뚝 선 나무보다

여럿이 모여 숲 이룬 나무들

태풍과 싸워 이겼다

 

 

 

 

산의 지혜 최경구

 

 

산이라는 이름을

서둘러 알리려고 않는다

등성이 바람 따라 오르면 된다

 

오지奧地산이라는 이름을

은연중 알리려고 않는다

계곡 물소리 따라 오르면 된다

 

산이라는 이름을

기꺼이 알리려고 않는다

수려한 경치 따라 오르면 된다

 

산이라는 이름을

우쭐대며 알리려고 않는다

험한 산세 따라 오르면 된다

 

누가 오를까? 산의 지혜

 

 

 

 

숲 소리 최태순

 

 

나무 사이

풀 사이

오고 간 숲 소리는

바람과 함께 하는 세상 이야기로

반짝 반짝인다

 

나의 마음이

괴로울 때나 슬플 때

그리고 불안할 때

숲속 한가운데 있노라면

물밀듯이 다가온

나의 삶을 조용히 다독인다

 

깨끗한 마음으로

나무 이야기를 듣노라면

거듭나는 기쁨과 즐거움 속에

또 다른 나를 만나 이야기 나눈다

 

그 이야기는

숲이 나에게 관심을 준다는 것을

 

 

                      *사단법인 한국산림문학회 간 산림문학2023년 가을(통권 5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