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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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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75주년 추념시집 '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2)

by 김창집1 2023. 10. 3.

 

 

산지포* 앞바다 - 김광렬

 

 

배를 타고 나간 한 떼의 사람들이

손발 꽁꽁 묶인

또 한 떼의 사람들을

무슨 짐승처럼 물에 빠뜨려 수장했다

 

그날을 잊었는지 저 바다는 고요하다

 

허나, 속의 바다도 그럴 거라고

섣불리 속단하지 마라

 

바다는 지금

안으로 조용히 뒤채며

무섭게 흐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아주 오랜 옛날 한라산이

참고 참다 기어이 자신을 드러냈듯

누구나

안에 뜨거운 불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이제 그 불을 잘 다스리고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을 절실히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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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포 : 제주항의 옛 이름

 

 

 

 

궨당 삼춘 강봉수

 

 

ᄇᆞ름 팡팡 부는디 어디 감수강?

 

ᄀᆞ만 앚앙 시문 살아지커냐

낮인 노랑개가 밤인 검정개가 왕왕 지서가난

해안더레 가든 산더레 가든

오몽해사 살 거 아니가

 

게난 어드레 가젠마씀

 

아방 쉐 심으레 웃뜨리 가부난

갯ᄀᆞᆺ인 못 가고 영 정ᄒᆞ당

웃 궤에나 곱앙 이서보카 헴신디

느 속솜ᄒᆞ라이

 

코풀레기덜 대령 가 지쿠과

게나대나 밥은 먹읍디강

정제가 석석해성게

감저영 지실 ᄒᆞ꼼 ᄀᆞ저와시난 알앙ᄒᆞᆸ서

 

아이고 막 고마와

우리 궨당 덕분에 살앗저

궨당도 멩심ᄒᆞ라이

 

예게, 삼춘

 

우리 궨당 삼춘 경ᄒᆞᆫ 시절도 살아시녜

 

 

 

 

섬의 하울링 고영숙

 

 

나는 몸이 없어 흐르지 않는 물의 기억입니다

 

살아남은 자의 한 자락 울음을 끌고 오는 새의 노래입니다

 

엇갈린 새떼들의 젖어든 동공 속 말라붙은 하얀 눈빛입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깃털처럼 가벼운 숨결입니다

 

애타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미처 잡지 못한 손끝이 이리 따뜻했을까요

 

빠져나오지 못한 오늘이 이처럼 붉었을까요

 

검은 눈물을 찍어 밑줄 그은 밤이

 

울음 묽어지는 여백을 덮습니다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는 흰 뼈 한 조각의 기억

 

나를 가장 아프게 껴안는 흰 빛입니다

 

 

 

 

배타성과 주체성 김규중

 

 

43이 커져버린 원인을 이야기하면서

그 중의 하나로

섬의 배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서청과 응원경찰대의 파견에

배타적인 섬 주민이 반감을 가져서

43이 커진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불편해진다

 

섬에서 나고 60년 넘게 살아온 제주인으로서

육지부에 있는 사람들은

제주도를 부속품으로, 전국이라는 단위에 필요한

구색 맞추기 용으로

육지부가 주이고 제주도는 객이라는

인식을 많이 갖고 있음을

여러 가지 체험으로 느껴 왔다

 

제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해운 회사가

오사카 배 삯을 터무니없이 올리자 권익을 위해 통항조합을 설립했고

해방이 되자 마을마다 학교를 만들기 위해 사재와 노동력을 바쳤고

인민위원회 활동이 자치기구로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진 곳이다

 

이 모습은 배타성이 어울리는가 아니면 주체성이 어울리는가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

주체성을 배타성으로 오독하지 말아달라고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을 놓치지 말라고

 

 

 

 

풍선 비망록 김병택

 

 

손에 잡은 풍선을 천천히 바다에 던지면

바다는 곧 출렁이는 붉은 파도로 변했다

구멍 난 풍선 속에는 붉은색 염료가 있었다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뒤부터 우리 가족은

바다에 던져진 풍선과 다르지 않았다

씨 말리겠다는 서청당원이 말에 어머니는

보름씩, 한 달씩 나*를 낯선 집에 맡겼다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죽은 어머니에게서

애써 찾은 증거는 금니와 삼베옷뿐이었다

듣기 싫은 말도 분명 있었을 테지만,

홍역 후유증으로 평생 난청에 시달렸다

바다에 던져진 풍선의 커다란 힘은 내가

건설업계로 뛰어든 뒤에도 발휘되었다

청년회의소 자매클럽을 방문하기 위해

회원들과 홍콩에 가게 되었을 때,

행정당국은 나의 여권발급을 거부했다

동행하는 사람들의 신원보증으로 결국

홍콩까지 겨우 갈 수는 있었지만,

바다에 던져진 풍선과 다름이 없었다

방문 밑으로 스며든 종이 때문이었다

거기엔, 이곳에서 만난 사람을 모두

기록해서 제출하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학교 공부를 아주 잘했던 우리 아들은

공무원도, 법관도 아예 포기해야 했다

사람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손뼉 치며

대한민국을 크게, 힘차게 외칠 때마다

내 눈의 망막에 끊임없이 어른거렸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때의 여러 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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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과 평화(vol 49, 2022 겨울호)에서 43을 증언한 임충구 님을 가리킨다. 이 시에서는 임충구 님의 경험을 토대로 삼았다.

 

 

 

*제주작가회의 엮음 제주43 75주년 추념시집서러울수록 그리울수록 붉어지는』 (한그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