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카테고리 없음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2)

by 김창집1 2023. 10. 12.

 

눈동자 속으로 들어온 오로라

 

 

태양의 얼어붙은 입술이 남극의 빙산에 걸려 있다

난 눈 내린 지붕 위에서 죽은 영혼들이 오로라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걸

보았지 누군가 오로라는 장미색 피부를 가진 금발의 아름다운 여신이라

말했던가* 엄마의 이상한 눈물 같은 오로라

엄마의 눈물은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지

마른 낙엽으로 젖은 온몸을 덮은 것처럼 따뜻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오로라를 보며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죠

오로라는 먼저 죽어간 내 사랑하는 여인입니다

거인의 발톱으로 만들어졌다죠

오로라의 낯선 냄새를 맡으며 배가 불러오기도 하고

나는 오로라의 끝자락을 잘라 마른 입안으로 삼키죠

그러면 내 어두웠던 눈동자는 태양계 밖 행성을 볼 수 있고

추운 겨울날 거리를 떠도는 차가운 영혼을 사랑하게 됐죠

나는 오로라의 날카로운 발톱을 잘라 차가운 영혼들에게 나누어주고

다시 발톱은 우울하게 움직이지 않는 누추한 심장에 박힌다

휘몰아치는 눈 속에서 심장이 다시 뛰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왔지만 아픔을 느낄 수 있어 눈물을 흘렸다

눈보라 속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삼키던 하얀 유령들이

오로라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유령들이 거대한 오로라를 손으로 떠받치고 있다

유령들이 오로라 불빛 속에서 떨어진 귀를 줍고 있다

오로라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거나 바닥에 흘린 그 불타는 지느러미를

먹어본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눈을 감으며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다시 눈보라 속에서 유령들이 죽어가는 영혼들을 오로라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오로라 같은 신비한 비밀 때문에 나는 죽지 않고 여태껏 살고 있다

오로라가 내 심장 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깨끗하고 이상하게 살 것이다

 

---

*오로라라는 이름은 아우로라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새벽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며 로마신화에 나오는 여명의 여신(그리스 신화의 에오스)’이기도 한다. 아우로라는 장미색 피부를 가진 금발의 아름다운 여신이라 하여 태양신 헬리오스의 누이동생이다.

 

---

 

상어

 

 

용감한 바람이 저 벚꽃나무와 벚꽃나무 사이를 서핑하며 통과한다

꽃잎 속에서 기다란 손이 내 몸을 낚아채어 어둠 속으로 끌어당긴다

 

상어야, 내 단단한 어둠을 먹을 수 있겠니

당신의 날카로운 눈알을 꺼내 내 버려진 눈에 심을 수 있겠니

 

한상 사랑에 배고픈 한 여자를 사랑했다

해가 뜨면 매일 그녀의 아름다운 실험실로 찾아간다

자옥한 연기 사이로 참치 눈알 같은 그녀의 눈동자가 빤짝거린다

그녀의 빨간색 하이힐에는 거대한 날개가 달려 있다

마음만 먹으면 그녀는 구름이 될 수 있고 태양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누군가의 허약한 영혼을 훔친 유령이다 그녀의 영혼은 여전히 날카롭다

나는 매일 그녀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책을 읽으며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옷을 입으며 같은 꿈속에서 죽어간다

 

상어야, 내 대신 죽을 수도 있겠니

 

그녀는 나에게 용감한 상어 인형을 선물한다 겁이 많은 나는 인형을

내 불안한 심정에 꽂고 무심히 버린 따뜻한 눈물을 먹는다

나를 비난하는 너희들을 죽을 때까지 사랑해야지

서랍 속에 상어 인형을 감춘다

달그락 달그락 12시가 되면 서랍 속에서 상어 한 마리가 나와

몰래 내 허약한 꿈을 뜯어 먹고 있다

 

상어야, 나를 죽일 수도 있겠니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시와 세계,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