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드름 - 전선용
고드름을 생각하다가 베드로라고 쓴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그는
외골수,
땅을 지향한 죽음
고드름 같은 몇 번의 죄가 문신이 되어
하늘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영혼을 위해
잡아도 잡히지 않는 박해를 위해
고드름도 피땀을 흘린다는 사실
물구나무선 채 죽어간 그가
저녁 무렵 소름으로 자라 내 피부에 자랐다
거꾸로 매달린 것과
뒤집어야 바로 보이는 것들
시체 같은 겨울,
고드름은 흔적 없이 사라질 우리의 사자 굴이다
♧ 법가法家 - 김석규
제자백가시대의 법가는
상앙商鞅 관중管仲 申不害(신불해)를 거쳐
한비韓比가 계승하였는데
이는 법을 유일한 방법으로 하는 정치사상으로
한비자韓非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韓나라 임금 소후昭侯가 술에 취해 자고 있을 때
임금의 관과 모자에 관한 일을 맡은 신하가
임금이 추울까봐 자기의 옷을 벗어 덮어주었다
잠을 깬 임금이 좋아하며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누가 옷을 덮었느냐’ 하고 물으니
신하들은 ‘전관典冠이 덮었습니다’ 하였다
그 일로 인하여
임금은 전의典衣에게는 벌을 주고 전관은 사형을 내렸다
전의를 단죄한 것은 자기 임무에 태만했기 때문이고
전관을 처벌한 것은 자기의 직무 범위를 월권했기 때문이다
임금은 추운 것을 싫어하지 않음이 아니라
나의 직무의 권한을 침해한 해가
추운 것보다 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시詩가 시인詩人에게
좋은 시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훌륭한 시인이 사람 세상을 만드니,
너와 나 가는 길이 하나뿐일지라
가도 가도 먼 길이 가까웁기를!
♧ 어울림 – 도경희
장마 끝 폭염을
날고 있는 잠자리 떼
가신가신하게 부딪칠 듯 모여들었다가
휙 돌아서 날기를 반복한다
부딪치면 어쩌려고
바라보는 달개비꽃 새가슴이 수근수근 뛰고 있다
바람결 피리 부는 미루나무가 능청한 품을 내려놓고
해맑은 봉선화 빛 원무를 내려다보고 있다
자꾸만 가슴 걸어 잠그는 저 고매한 집에
알랑알랑 날개 흔들어 간지럼 먹인다
♧ 딸 – 이산
아름다움이 있다
고운 선이 예쁘고
갓 구운 빵처럼 자상하고 따스하다
아내로 사랑은 과즙처럼 달콤하고
어엿한 엄마의 손길은 전능하다
한 지붕으로 모은
나트랑Nha Trang의 에메랄드 바다에는
멈추고 싶은 시간이 차마 눈을 감고 있다
바로 오늘이다
*월간 『우리詩』 2023년 10월호(통권 424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