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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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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우리詩' 10월호의 시(3)

by 김창집1 2023. 10. 16.

 

*우리지역회원 특집(포항회원)

 

 

 

구름 차영호

 

 

지구상에 현존하는 수십억 얼굴을 한데 모아도 다 다른 구석이 있듯

니 낯도 늘 다르다

 

재현 불가능한 몸짓으로 줄느림하는

별리別離

선상 강우대

 

니가 뒤척일 때마다

코끼리가 흰긴수염고래로

흰긴수염고래는 코끼리로

송출되는,

 

 

빗물에는 니 지문이 용해되어 있어

내 손가락이 젖을 때마다 겹겹

콘택트렌즈처럼 겹쳐지고

 

척척한 엄지손가락 지문을 핑계로

니 잠긴 창이 다시 열릴 수 있다면

 

 

 

 

봄날 - 송기용

 

 

통도사 홍매화 피는 날에는요

마음 비운다는 거 말짱 공염불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안거 면벽수행이 무슨 소용인가요

꽃가지 저어기 안짝 어디에

불현듯 붉은 매화망울

세상번뇌 세상 인연 다 그렇게 돋을 것인데요

잊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쉽나요

절마당 매화꽃 피는 날에는요

애꿎은 목탁소리 커지고요

종일 염불소리 높지만요

여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싶을 적에는요

처마끝 적시는

봄비

풍경소리,

회색 승복을 걸치고 선 저 매화나무

가지 속 붉은 사랑 하나 없을라구요

보세요

대웅전 부처도 가부좌 풀고 슬몃

감았던 눈을 떴다가 감잖아요

 

 

 

 

자궁과 바다 손창기

 

 

  오래된 그녀가 뿜어내는 냄새는 다르다. 저승꽃 무성한 살비늘 냄새가 난다. 본인은 정작 모르는, 아들과 며느리가 명절날 잠시 희석시키고 갔다. 냄새는 죽음이 뿜어내는 냄새라 제자리로 돌아왔다. 죽음 직전 도사견이 풍기는, 해묵은 족보 책에서 풍기는 그 내음, 바다 냄새를 밀어내고 벽지에 얼룩을 남기며 떠돌아다닌다.

 

  사내와 오래

  몸 부비는 사랑을 나누었다면 자궁에서

  바다 냄새가 났을 것이다. 바다 냄새를

  맛보았을 것이다

 

  각 방 쓰던 아내가 새벽에

  홀아비 냄새를 희석시키고 갔다

  공기를 요리하고 간 후

  마당에 떨어지는 비와

  여름 폭풍에서 만난 먼지 냄새가 났다

 

 

 

 

팔월 여름 어느 오후 민구식

 

 

후덥지근한 오후가 설익은 육체를 익힌다.

장마와 태풍의 세례식이 미흡했나 보다.

배경색을 어둡게 가리고 내려온

구름이 제 몸을 뒤척이며 찾는 이름은 숨는데

매미는 우중에도 임을 부른다

제 몸 비틀어 허공에 매다는 울음이 간절하다.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여름이 가을에게 이길 수 없다는데

그 때가 오기에는 아직도 한 파수는 더 견뎌야 하겠지

간절함은 지울 수 없고 채워야 할 색은 흐리다.

팔월은 증발을 승천으로 바꾸는 계절

따가워야 하는 볕의 섭리를 우산으로 가둔다.

허기진 여름의 끝을 잡고 우는 외짝들처럼

간절해보지 못한 파월이 허송허송 가고 있다.

 

 

 

숲에서 - 방화선

 

 

푸른 숲, 길을 열고

귀를 젖혀 바람을 들입니다

늙은 나무 등뼈에 박힌 느린 박자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예민한 귓속

수다스런 검은 혀

풀 수 없는 암호 헝클어진 소용돌이 속에

무기력한 걸음 비틀어진 진동

 

길을 재촉합니다

 

일요일의 작은 바람과

헛디딘 발 미끄러진 풍문을 헤집고

고개 돌려 초록 대기를 호흡하면

푸른 바람 달팽이관 깊숙이 밀려듭니다.

 

숨을 가다듬어야 해

보이지 않는 길 끝 소실점을 찾아

손을 뻗치면

새 길이 열립니다.

 

 

                      *월간 우리10월호(통권 4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