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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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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76주년 추념시집'의 시(1)

by 김창집1 2024. 10. 30.

           * 수평선 접힌 자국마다 그늘진 절벽

  

 

 

섯알오름 구름 터 강경아

 

 

중산간에 걸린 구름이 좋겠어요

총칼에 베인 만장이 붉게 펄럭거려요

골절된 바람, 터진 입술은 부풀어 올라요

퍼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눈물샘처럼

가슴에 커다랗게 뚫린 구명 하나

 

어드레 가민 촞아짐직 허우꽈?

 

탄약고 구름 연못 속에 당신이 비춰요

오름이 라는 볏짚 가마니를 들추면

싸늘해진 억새꽃 얼굴들이 쭈뼛쭈뼛

예비검속에 절여져 썩지 않는 기억들

물이끼 습한 어둠으로 덮으려 해도

녹이 슨 철근에 찔린 채 뒤엉켜버려요

 

잿빛 구름은 뉘엿뉘엿 흐르고

물결이 일지 않은 웅덩이를 바라봐요

 

죽어도 죽지 않는 당신을 꺼내요

서로 다른 유해가 한 몸이 되어요

백조일손(白組一孫)의 이름으로

온전한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한낮의 서정과 한밤의 비명

임자 없는 목숨처럼 뭉게뭉게

흰 백발 한라산이 지켜보고 있어요

 

 

 

 

그해 6- 강덕환

 

 

때는 왓씀니다

여러분의 보리는 노라케 이것씀니다

속히 비여오지 안하면

비가 와서 밧에서 주거버림니다

조곰도 걱정 마십시오

여러분네을 직히여주는 것은

박연대장 하에 잇는 조선국방대와

최천 경찰청장 하에 잇는 경찰관의 일임니다

얼마업서서 이 경비대와 경찰은

만흔 총과 탄환으로 산과 내, 굴렁을 씨러

공산주의자 나뿐 놈들을

제주도 박게로 내좃칠 것임니다

여러분의 곡식을 수확하고

아해들을 학교로 보내고

여러분의 일상생활에 도라가십시요

서기 194862일 듼 군정장관을 대표하여

육군대좌 로뿌라운

한라산야에 살포된 이 삐라를 곧이곧대로 믿고

그해 6, 돌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직히여 준다던 박연대장은

얼마 없어 부하의 총에 암살당했다

 

 

 

 

보리밭 속으로 떠나는 여행 - 강동완

 

 

보리밭 속으로 차가운 그림자 하나 살랑거렸다.

43의 쓸쓸한 영혼이 피에 물든 붉은 보리밭 속에서 유골처럼

하얗게 날린다.

몇 개의 빗방울들은 거친 보리 잎을 구슬처럼 구르다가

따뜻한 보리 잎에 맺혀 죽어간 영혼의 눈물처럼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따뜻한 영혼들은 석양 속으로 은빛 잉어처럼 죽음을 껴안고

고요히 흘러갔다.

보리밭에서 누나와 난 발뒤꿈치를 바짝 올리며 보리들과 키를 견주고

우리들의 몸속에선 붉고 슬픈 노래가 흘러나왔다.

난 허물 딱지처럼 외롭게 견뎌 왔다.

그 슬픈 노래에 맞추어 우리 동네 벙어리 아저씨가

석양이 투명해질 때 트럼펫을 연주한다.

트럼펫 소리가 죽어간 영혼의 울음소리 같았다.

벙어리 아저씨는 그날의 절망을 모두 보았고 모든 것을 안다.

온전히 사는 것보다 차라리 벙어리가 되는 게 낫겠다고

벙어리의 삶을 택했다.

보리밭 속으로 어린애들이 수군거리며 빙긋이 웃고

죽어간 슬픈 영혼들은 붉은 보리 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다시 보리밭은 빈집에 가둔 슬픔처럼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우우우 울어대고

살랑살랑 아주 가느다랗게 내 허약한 넋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고 있었다.

 

 

 

 

제주사름 사는 법 강봉수

 

 

밥 먹읍디강

밤새 벨일 어십디강

어디 감수강

 

생사가 불안했던 시절 있었다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묻는 건

ᄂᆞᆷ이대동 ᄒᆞᆫ디 살길을 찾는 일이었다

느영 나영 구별 읏이

우리로 ᄒᆞᆫ디 살아가는 이유다

 

한 올래 ᄒᆞᆫ 질에 살면

모두가 궨당

죽을 고비 넘긴

제주사름 사는 법

 

 

 

 

목욕탕 서사 강은미

 

 

  설 앞두고 사십 년 만에 찾은 동천탕에서

  내외하듯 등 밀어주다 발견한 불탄낭 자국

  냉온탕 번갈아 가며 기억은 가물거리는데

 

  와작착 들이닥쳔 콱 찔런 ᄃᆞᆯ아난게 모가지로 피는 콸콸 나고 할망은 콕 박아전게 숨 끄차져불고 도새기영 ᄃᆞᆨ이영은 막 왜고 난 막 노래연 울단 팍 푸더젼게 그만 이레 이레 막 그쟈, 에에 모르켜 확 밀라 무시거 햄시

 

  안개 속 불콰한 낯빛

  텅 빈 뼈마디 마디

  어머니 기억의 된소리는 맥락 없이 흐르고

 

  아직도 동굴에 갇힌 왜가리 울음소리

  오목가슴 아래쪽에 돌덩이로 앉았는지

  손대면 눈 질끈 감은 채 아욱아욱 운다

 

 

   *제주43 76주년 추념시집  『수평선 접힌 자국마다 그늘진 절벽(한그루,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