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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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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4)

by 김창집1 2024. 11. 5.

 

 

      [특집: 416, 그날을 기억하다]

 

 

슬픈 안부 - 양동림

 

 

누나 배가 이상해. 쿵 소리 났어

누나 사랑해. 그동안 못 해줘서 미안해.

엄마한테도 전해줘. 사랑해.

3G도 잘 안 터져.

나 아빠한테 간다.

 

416일 오전 935분에

발송된 문자에 답한

사랑한다는 메시지는

언제쯤 도착할까?

 

멀리 떨어진 남해안의 심에서

바다를 향해 보내는 사랑한다는 메시지는

10년 동안이나 열어보지 못한 채

쌓이고 쌓여

해마다 돌아오는 4

바짝 졸아든 미역국이 너무 짜다

 

---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문자

 

 


 

빗줄기의 힘 양순진

    -팽목항 세월호 앞에서

 

 

팽목항에 눈 감지 못하는 저녁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풋내 나던 아이들 꿈의 출항 침몰에 휩싸여

비명마저 잠겨버렸을 때

고래만한 절망 조국을 덮었다

더러는 생존하고 더러는 꽃이 되어

피울음 바다로 물든 나날

바다에 안겨 영영 볼 수 없는 아홉 명 미수습자

천 일 동안 한순간도 포기하지 못한 채

등대로 서 있는 부모에겐

넋 놓고 갈매기로 떠도는 가족들에겐

날 선 그리움의 난간이었다

그 오랜 속수무책은 인장 같은 노란 리본만이 증명할 뿐

책가방 속 꿈들은 치어처럼 선명하게 공중을 떠돈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세월호는

과중한 죄목의 무게로

잃어버린 3년 인양하지 못해

빗줄기의 힘 빌려 끌어 올린다

비는 보았다, 침몰에서 통곡까지

한탄에서 봉쇄까지

해답 없는 절규는 천 년보다 긴 천 일의 파노라마였다

팽목항 녹슬어가는 기억의 문 저편

노을에 절인 참담의 뱃무덤 떠오르고 있다

더러는 왜곡되고 더러는 불분명한 사유로

찬란한 청춘 유린당한

아름다운 꽃들에게 누가

재생의 빛 환원해줄 것인가

때로 침묵은 통분보다 강하다지만

오늘은 살아 있어 부끄러운

목격자들 함성이

치졸한 침묵을 쓰러뜨릴 것이다

바다는 어린 꽃들을 껴안은 채

수심의 돌기 휘몰아

오직 칼날 같은 빗줄기 힘으로

묻혀진 진상 규명 끌어올리고 있다

 

 


 

소리샘으로 연결되옵니다 양영길

 

 

막걸리나 한잔 하자던 친구가 연락이 안되었다

배를 타고 어디 갔다 온다던데

 

전원이 꺼져 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음성녹음은 1, 호출 번호를 남기시려면 2번을 눌러 주세요

눌러야 할 시간이 지났습니다

음성녹음은 1, 호출 번호를 남기시려면 2번을 눌러 주세요

 

사나흘 동안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했지만

꼭 같은 기계음만 들어야 했다

일주일이 지나 다시 걸었다

1번을 눌렀다

삐 소리가 나면 녹음하시고 녹음이 끝나면 별표나 우물정자를 눌러 주십시오

잠시 망설이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기계에 대고 말을 하려니 말문이 막혔다

목이 메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날

바닷가를 거닐며 또다시 전화를 길었다

너도 밖으로 나와서 저 둥근달을 함께 보자

그러려고 했는데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전화번호를 확인하신 후 다시 걸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잘못 걸었나?

확인하고 다시 걸었다 같은 소리 였다

또 걸었다

친구의 번호가 없어졌다

번호로 규정되는 우리들 세상에서

 

번호가 사라졌다

이제 3년이 지났지만

연락처를 검색할 때면 언뜻언뜻 나타나는 친구 이름

아직도 남아 있는 친구 번호

차마 지울 수가 없었다

달빛이 물을 머금었고 몹시 출렁거렸다

 

*시집 꼰대론(문학광장, 2024) 수록

 

 


 

꿈의 노예 오광석

 

 

함덕리 해변에 앉은 그의 뒷모습은

빈 소주병을 닮았다

전날 뉴스엔 가라앉는 배에서

아이들을 구한 의인이

자살을 기도했다고 보도했다

 

잠을 자고 싶어

꿈을 꾸지 않는 깊은

잠을 자고 싶어

몸속에 흐르는 꿈을 때버리면 될까

손목을 그었다

몽롱해지는 정신 속에 아이들이 찾아왔다

물을 뚝뚝 흘리며

목이 참긴 목소리로 아저씨하고 불렀다

! 꿈을 꾸지 말아야 하는데

도대체 아이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집 밖 바닷가 물속에서 걸어 나오는가

 

가족들의 웃음을 실은 화물운송은

꿈의 노예가 되는 비극으로 끝나고

가족들의 웃음은

분신 같은 화물차와 함께

바다 속에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도 꿈의 바다를 빠져나오려

헤엄치고 있다

 

산 사람들은 말없이 외면하고

죽은 아이들만 꿈속에서 살아나와 부르는데

밤이 되면 잠들기 위해 소주를 붓는다

두어 병의 소주가 위 속에서 출렁거리면

흔들리는 시야에 다시 침몰한 배를 탄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면

애써 눈을 돌리며 도망치다 잠에서 깨어

바닷가로 나간다

여름 겨울이 지나고

또다시 찾아오는 봄이 무서워

꿈속에서 부르는 아이들이 무서워

눈을 감지 못한다

 

*계간창작 212016년 봄호/ 시집이계견문록수록

 

 

 

 

제주도 - 오세진

     - 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발매를 기념하며

 

 

순전

낳은 님

기룬 님

목소리만

동그랗게

닿은 곳

 

수이

숨 붙어

닿을 수 없는 곳

 

생심

마지막 숨을

걸고

닿을 수 있는 곳

 

세월

숨을 들이고

숨을 내고

기적 닮게

닿을 곳

 

 

              * 제주작가86(2024년 가을호)에서

                     * 사진 :  제주 '수중 올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