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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제주시조' 2024 제33호의 시조(12)

by 김창집1 2025. 4. 13.

 

 

그 섬에서 이창선

 

 

바다 위 테왁처럼

불룩이 떠 있는 섬

 

그 섬들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멋진 사람을

만나기 위함일까

 

 


 

한라산에 취하다 임태진

 

 

소주에도 남다른 품격이 있다는 듯

한라산 목덜미에 선명한 태극 문양

애국심 빙자한 상술 태극기도 취하겠네

 

잊혀지는 역사처럼 낮아지는 알콜도수

소주 한 병 다 마셔도 간에 기별도 안가

기어이 불러들이네 21도 한라산소주

 

평소엔 잊었다가 취하면 떠 근는

4.3 소용돌이에 휩쓸려간 막내아들

목 놓아 불러보아도 대답 없는 한라산

 

화산섬 숨골마다 연중 솟는 그리움

한날한시 떼로 묻힌 원혼들 그 절규가

귓가에 생생한 사월 안 취하고 배기랴

 

 


 

무인도 장영춘

 

 

사람도 섬이 되는 그런 날이 있다

저녁이면 물안개 이불처럼 덮여오는

새소리 모두 잠들은

해안가를 맴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좁혀서야 보이는

출렁이던 시간도 파도 속에 묻힌 채

헝클린 마음 한 자락 헹구고 또 헹구는

 

썰물이 지난 자리 밀물이 차오르듯

이제 막 무장해제 하루를 재워놓고

다려도 저녁놀 속에

어진 손을 담근다

 

 


 

설렘 충전 중 장한라

 

 

  초승달이 떴다고 울리는 안부에

 

  창문 열어보니 새초름한 눈썹달. 삶의 무게가 어깨 위에 얹힐 때, 보름에 한 번 떠오르는 초승달 바라보며 내일은 웃음만 가득할 거라고 눈 감았다 떴다, 떴다 감았다, 가녀린 눈이 반달이 되면 기쁨도 차오를 것이라고. 달포에 오실 약속 한시바삐 잰걸음으로 오시려나. 두려워라 뾰족한 것이. 새들아, 바람아 우리 함께 손잡고 돌자. 당신 보고파 서너 바퀴 맴돌면 첫새벽 찾아오리니

 

  초승달 끝과 끝을 풀고 한 뼘씩 채우는 중

 

 


 

도서관에서 추사를 만나다 조한일

 

 

자가격리 6개월 리모델링한 도심 도서관

낯설어진 자료실에서 홀로 길 잃었다가

봉은사 판전板殿을 쓰는

추사 선생 만났다

 

원악도遠惡島 제주섬 유배 해배된 지 백팔십 년

새 서가에 등 돌려 앉은 그를 본 사람 드물어

김정희검색하고서

겨우 닿은 그의 거처

 

콘크리트 위리안치 도서관은 책 유배지다

부동의 위병들처럼 몇 년을 꽂혀 있어도

아무도 찾지 않으면

경직되는 책의 관절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2024 3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