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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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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우리詩' 9월호의 시(2)

by 김창집1 2023. 9. 22.

 

 

변산바람꽃 정순영

 

 

새하얀 변산바람꽃이

내 안에 피니

 

눈 귀가 밝아져

하늘의 소리가 훤히 들리고

 

내가 하늘빛을 머금어

세상을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네.

 

 

 

 

개밥에 도토리들 - 김동호

 

 

개처럼 영리한

동물이 왜 그 좋은

건강식품 도토리를

먹지 않는 것일까

 

반려견 전성시대

이런 질문 하나

나올 법도 한데

안 나온다

 

혹시 반려견 사랑이

넘쳐남이 개밥의 도토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때가 있다

 

 

 

 

하늘색 책상 - 서량

     -마티스의 그림 책 읽는 소녀, 꽃병의 소녀에게(1922)

 

 

펼쳐진 책에 어둠이 깔려요

꽃병에 꽂혀 있는 꽃

꽃에 내려앉는 기생잠자리

반만 열려 있는 여자의 눈

내 무의식도 반만 열려 있다

등에 수직으로 꽂히는 무지개

머릿속이 가려워요 캄캄해

 

 

 

 

나비 한 마리 이상호

 

 

불을 켜고 누우면 검은 눈을 한 개 가진

이상한 물체들이 눈 속에서 붕붕 날고 있다

어떻게 날아다닐 생각을 검은 색으로 했을까

 

반사경을 머리에 끼고 아래쪽과 위쪽을

공격적인 자세로 토끼몰이 하듯이

망막의 가장자리로 내몰려는 한 마리의 검은 나비

 

작은 몸에 날개를 감추고 날아다니는

저 작고 아름다운 것들의 삶의 방식이란

연분홍 레이저 불빛에 한 순간에 잡히는 것

 

까끌거리는 밤마다 눈두덩이 비비며

왜 이러지, 왜 이러지, 인과를 가봐야겠다

점처럼 보이다가도 금 가거나 깨진 나비

   

 

 

 

은하계 사진 - 여영현

 

 

병원에 다녀온 아내가 사진 한 장을 내민다

초음파로 찍은 희미한 은하의 모습이다

갓 생긴 성단이 자궁에 자리 잡은 후

처음 보내는 빛의 파장,

검은 공간에서 목화송이처럼 생명이

하얗게 부풀고 있다

인화지에 드러난 아프로스가

나의 눈길을 붙잡는다

그 은하의 중심부를 손가락으로 짚어보니

몇 억 광년 떨어진 그 곳에서

벌써 둥근 입 하나가

손가락 끝을 쪽쪽 빤다

신생의 잠이 아프로디테처럼 눈부시다

중력에 이끌린 별무리가 속속 빨려들고

그 파장에 나도 소용돌이치는데

생명의 중심부가 하, 밝다.

 

 

 

                 * 월간 우리20239월호(통권 4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