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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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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문학' 2023년 가을호의 시(1)

by 김창집1 2023. 9. 23.

 

 

우는 새 - 김귀녀

 

 

마른나무 우듬지 위에서

까마귀 한 마리

울다가 가네요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지치지 않고 똑같은 소절로

울다가 가네요

 

나무냄새 풀냄새 송진 냄새

버섯 냄새가 나야한다고

나무줄기마다

하지만 울다가네요

 

새는 목말라 죽어간다고

병색이 짙어간다고 외치고 있네요

 

덤불속에 나무들이 싹틔우고

곱디고운 연둣빛 잎을 펼치는 숲이 그립다고

울다 가네요

 

 

 

 

쥐똥나무의 근심 - 김내식

 

 

누군가 나를 쫒아온다

어두운 밤에

나는 바람에 흔들리며 도망을 가기위해

빨리 뛰면 뛸수록

뒤돌아보면

더 가까이 따라오니

지칠 대로 지치어

멈추었다

늘 내가 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주시하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부질없는 근심의

그림자였네

 

 

 

 

굴참나무 기슭 - 김영

 

 

나무가 한 그루의 기슭이라는 걸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무수한 파문이, 파문 밖으로 번져

때때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물꼬를 트듯 새 가지를 내고

한여름이면 무성한 이파리들 위에

호수 하나 펼쳐놓고 있다는 것도

가끔 물방울들이 넘치는 것도 알고 있다

 

숲이 출렁여도 호수는 쏟아지지 않았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

숲의 주소가 해발로 시작하고

호수의 주소가 산 1번지로 시작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뿌리를 적신 어린 호수가

굴참나무 물관부를 따라 우듬지에 이를 때

나무는 찰박이는 기슭이 된다

굴참나무는 죽어서도 이 파문을 놓지 않아

가을이 되면 풀숲도 나무 밑도

몇 가마의 파문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본다

톡톡, 어린 파문을 떨구는

풍성한 숲은 번식의 법칙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누군들 저의 파문을 내어놓고 싶겠는가

그저, 꾹꾹 눌러 놓은 용수철 같은 파문을

아무도 모르게 내년

또 후년으로 나를 뿐이다

 

깊은 숨소리가 숲의 소리와 닮은 것도

닮는다는 것이 담는다는 것과 이음동의어인 것도

나무와 사람은 같은 숨을 서로

나누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산림문학2023년 가을호(통권5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