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빗방울
톡, 톡, 누구신가요
움막 입구가 소란스러운데
술 한잔 걸쳤는지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창 안은 왜 이리 꿉꿉한가요
식탁엔 햄버그스테이크 한 접시, 와인도 한 잔
며칠 쫄쫄 굶었을 몽달귀도 부르고
고운 할머니도 오실까,
땅꾼을 피해 멀찍이 숨어있는 구렁이도 달래주고
오랜만에 톡톡
누구신지,
공중 문 활짝 열어놓고

♧ Tonight
사방 길 닫히고
왁왁한 천계를 뚫고 그분이 오시면
직립한 들판 어디선가 시원의 울음 들려올 때
승냥이 눈빛 같기도 한 그녀가 찾아오면
오두막집 쥐구멍 틈새, 속절없이 눈 내리고
할머니 마을로 가는 보이지 않는 길
흰옷 입은 사람들 해거름에 사위듯
꿈틀대는 우주가
온전히 투명 빛깔에 걸려있는
오늘 밤에

♧ 저물녘
별거 중인 아내가 입원한 후
누추한 정신의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쓸모없는 몸을 새하얀 도화지 위에 올려놓고
망연히 바라보는 저쪽,
홀로 걸어온 햇살과
저 빗물과
저 어둠까지 죄다
서산에 묻히는

♧ 별에서 온 그녀
병실에서 잠시 나온 그녀와 손잡고 별나라 이야기를 하다가
깜박이는 기억의 숲으로 걸어갈 때
그녀는 자꾸만 하늘로 오르자 하고
나는 지상에 단단히 서 있자 하고,
하늘은 지상의 밑바닥이란 걸 아무도 모를 거야
오랜만에 수줍은 햇살이 자꾸만 기웃거리고
눈동자는 먼 나라 소녀처럼 반짝이고

♧ 지상은 어둑어둑
알아, 그대가 하늬바람으로 올 때
어둑어둑 지는 천계의 능선으로 올 때
나는 깊은 꽃밭
첫눈 속으로 슬며시 스며들었다는 걸
알아,
흐린 시간에 기대어
뒤란 동백처럼 흔들리다가
시원의 숲으로 무작정 걸어갈 때
그대, 두 눈 감은 채
빈 몸으로 서 있다는 걸 알아
이 지상
아는 이 모두 떠나고
천지는 어둑어둑
기억의 한쪽은 자꾸만 서산으로 기우는데
*김원욱 시집 『누가 저 푸른 창을 깨뜨릴까』 (애지, 202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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