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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경희 시집 '꽃은 꽃으로 답한다'의 시(5)

by 김창집1 2026. 10. 31.

 

♧ 인연

 

너를 별로 그려 별이라 이름하여

유리창에 걸었지

 

너를 꽃으로 그려 꽃이라 이름하니

창가에 향기로 머물렀지

 

햇살의 온기에 고운 순을 내밀며

생의 융단을 활짝 펼치고

나풀나풀 바람 타고 날아온 여름

 

풍성한 가지 위에서

짙은 녹음으로 머물다간 자리에

쪽빛 가을이 노랗게 물들고

 

나무마다

꽃눈으로 이른 겨울을 채비하면

파란 하늘엔 하얗게 별이 날리고

우리의 재회는

꽃망울로 움트고 있었지

 

 

♧ 꽃은 꽃으로 답한다

 

지난여름 7월의 한낮

우리의 첫 만남은

놀라운 우연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한 운명 같은 해후

 

단아한 모습에

오갈 때마다 눈길이 가니

너는 모퉁이에 한 발 내어선 채

나를 맞아주었지

 

오늘 너를 만나러 가는 줄 어찌 알았을까

주변은

입 꽉 닫고

눈 꼭 감고

아직은 이르다 외면하는데

천지에 오직 한 송이

고고하게 피워 인사를 건네는구나

 

아!

세상이 멈췄다

발이 붙었다

 

해를 건너 다시 온 태양의 계절

푸른 잎새 위에 노오란 보석처럼 피어난

황근 한 송이

 

 

♧ 초봄

 

봄이 떠나는 길목

우체국 왼편 양지바른 비탈에 선

아담한 나무 한 그루

 

빗질 안 된 머리카락 마냥

이파리만 덥수룩한데

이마에 주름 세워가며 보니

딱 매실나무이건만

미심쩍은 듯 외면하는 주변의 시선

 

오른쪽 뒤로 한 발짝

왼쪽 앞으로 두 발짝

슬쩍 다가가 들춰보니

속가지 사이로

올망졸망 숨어있는

동그란 열매 대여섯 개

 

다시 돌아온 새침한 봄

깔끔하게 단장한 그 나무엔

가지마다 하얗게 피어난 다섯 잎의 매화

 

흐뭇한 내 눈엔 꽃잎 하나에 열매 한 알

어느새 매실청이 한 단지

 

 

♧ 벚꽃이 나린다

 

눈이 온다

하늘하늘 날린다

 

단아하게 쪽진 어머니 머리 위에

손녀딸의 오똑한 콧날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하얀 매화 떠나고

복사꽃 붉은 마당 앞 지키던 자줏빛 목련도

푸른 잎사귀 너울대며 봄을 채워 가는데

 

느지막이 다녀가는 꽃샘추위에 움츠렸던 꽃망울

좋은 햇살 가득 품고 보란 듯

연분홍으로 터져 수줍음 만끽하더니

 

못내 아쉬운 짧은 나들이

온 세상 돌고 돌며 화려한 춤사위로 펼쳐내다

응달진 담벼락에 하얗게 눈처럼 내려 쌓인다

 

땅을 구르며 바람에 흩날리다

홀연 사라져 간다

 

 

♧ 속삭임

 

새벽이슬의 향일까

갓 구워낸 밀푀유일까

 

낯선 여행길의 이른 아침

태양보다 먼저 깨어난 도시의 모퉁이

은은하게 불을 밝힌 아담한 수제과자점을

첫 손님으로 찾아간 듯 은근한 즐거움이 퍼진다

 

한 줄 한 줄 따라가면

바사삭바사삭 리듬을 타며

진하게 퍼지는 고소한 향

 

모두 잠든 한 밤

뭉근하게 데워진 이불 속에서

아껴둔 과자 마냥

가만히 책장을 펼치면

 

새로 사귄 친구의 맑은 위로인 양

숨겨둔 나의 마음이 나비처럼 날갯짓한다

 

 

*김경희 시집 『꽃은 꽃으로 답한다』 (다층, 202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