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4년 15호의 시(2)

by 김창집1 2024. 11. 19.

 

 

허풍쟁이 김옥순

 

 

길들여지지 않는 말들이

좌충우돌

부딪치며 날아간다

한 치도 안 되는 혀가 가시를 달고

순한 말을 매운 말로

보통 말을 찰진 말로 버무려 낸다

바람길 앞세워 나르기는 일상이다

 

나를 친구를

타깃으로 목덜미를 쪼아대며

믿어달라고 애원해 본들

그 말에 진실이 얼마나 녹아있는지

겪어본 사람은 다 알 일이다

커피 잔을 앞에 놓고 마주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

한 가마니만큼 그럴듯하게 풀어내는 것을

태연한 척 받아주는 못난이 나

 

2000 단어를 모두 소비하는 너라는 사람

진실은 장롱 속에 넣고 꺼내지

 

 


 

미소 - 김정수

 

 

엄마는 먼저 간을 보고 상을 차린다.

 

상 치우기 전에도

손이 덜 간 음식은

엄마가 다시 간을 본다.

 

식구들 아무 탈 없이

하고 싶은 일 하며 살라고

엄마는 늘 간을 먼저 보고 상을 차린다.

 

엄마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아예 상에도 오를 수 없다.

 

잘 먹었다

 

이 한마디 말에

엄마는 설거지까지

후딱 해치운다.

 

 


 

아내는 그녀가 되었다 김종호

 

 

시집오던 날부터

아내는 이름도 없이

누구 엄마거나, ‘집사람이더니

하늘나라로 떠나서

나의 그녀가 되었다.

 

사는 날 동안

몸을 비비면서

한 공간을 호흡하는 공기 같았다

들여다봐야 보이는 거울 같았다

의식 밖에서 내가 살듯이,

닻을 내리고 흔들거리는 항구였다

 

살아서 아내는

벽의 달력 같았는데

나를 떠난 후 내게

반짝이는 그녀가 되었다

 

이 방 저 방 청소할 때도

세탁기를 돌려 빨래할 때도

텃밭에 쭈그려 상추를 딸 때도

내 손길이 닿는 데마다 그녀가 있고

날 저물어 밥 말아 후르륵거릴 때에도

그녀는 내 곁에 앉아서 훌쩍거렸다

 

이제 내 안에

먼먼 그리움이 되어

참 쓸쓸한 별이 되었다

밤마다 글썽이는 별이 되었다.

비로소 행복한 별이 되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지구 김중식

 

 

  우리는 지금

  23.5도로 기울어진

  지구를 타고 돌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큰 집은 바로 지구입니다

  이 지구는 23.5도로 삐딱하게 기울어진 채로 하루에 한 번씩 돕니다.

  한 번 자전하는 시간은 24시간 걸린답니다

  지구는 왜, 이리 삐딱해서 돌까요?

  하루에 도는 시간을 초로 말해 보면 86,400(24시간×60×60)가 걸립니다. 그러면 지구는 1초에 몇 미터나 움직일까요?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하루에 한 번 자전하는데,

  1초에는 463m(지구의 지름이 40,000km÷86,400ch)의 속도로 돌고 있다니

  느껴지십니까? 못 느끼신다고요?

  태풍 때 초속 4050m 정도 강풍이 불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없고 지붕이 날아가고 나무 등이 뽑히면서 어마어마하게 피해를 주는데,

  초속 463m! ! 날아가 버리겠네. , 못 느낄까요?

  우리는 지금 이런 어마어마한 큰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구는 인간들로 하여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우리의 이 큰집을 위하여

  아끼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지구는 우리의 생명과 같습니다.

  지구가 멸망하면 우리도 멸망합니다

 

 


 

석양과 길손 김창화

 

 

한담동 해변길 걷다

소로기 동산*에 앉아 보는 황혼

서편 수평선이 저무는 해를

황금빛 애무로 열정을 불사른다.

 

노을진 바닷물소리

들어보면

자연이 엮는 나지막한 현의 소리

 

내 연륜도 지금 이 시간에 닿아

마음이 노을로 물들고

혼자서 걷는 외로운 길손의 가슴엔

모든 풍경들이 노을로 젖어든다

 

그간 이 길에 버무려진 기억들은

숙성된 와인처럼 향기롭다

황혼에 걸린 오늘 하루의 아쉬움

거기엔

친숙하게 번져드는 명상이 있다.

 

---

*소로기 동산 : 한담동 해변 길에 봉긋이 솟은 돌 동산.

 

 

                            * 涯月文學20241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