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점의 도시계획 – 조한일
서점도 구도심과 신도시로 나뉜다
즐겨 찾는 코너는 신축 증축 개발붐 일고
먼지가 쌓인 외곽은 폐허 혹은 철거 중
학군 좋은 명당엔 수능교재 도배된다
교통 좋은 입지엔 베스트셀러 자리 잡고
직장인 전망 밝히는 처세술 코넌 만원 중
자격증 교재 책장엔 중장년들의 분양 신청
인적 드문 시집 코던 바리케이드 놓였나
한가한 그 동선 따라 번화가로 이동 중
♧ 늦꽃 따기 – 조희
개체수를 조절하다 딱하고 걸렸다
칠월의 마지막 날 얼룩무늬 그 녀석
꽃잎에 짝다리 짚고 제 것이라 우긴다
잘못 핀 꽃은 없어 이 꽃을 그냥 놔둬
엉덩이를 흔들며 벌까지 가세한 오후
하이고 어쩌면 좋아 꽃을 따 아님 마라
♧ 초록 경전 – 한희정
늙은 귤나무에 새순을 피울 적엔
울 엄니 관절통만큼 밤새 끙끙거렸겠지
수십 년
늘 그렇듯이
파스 한 장 붙인 채
서둘러 걷지 못해 하늘만 우러르네
다산多産의 온갖 풍파 고관절이 부러져도
수확기
다 내어주고도
파랑새가 앉았네
등 굽은 어머니가 다시 모으는 두 손
모두가 떠난 지금 너른 풍파 고관절이 부러져도
입춘 녘
이파리 아래
어린 울음 듣겠지
♧ 아버지 – 김영숙
바다로 간 사내의 눈물이 검다는 걸
소리 내 울 수없는 울음은 검다는 걸
바닷가 조용한 마을 여기 와서 알았네
가마우지 아내가 저녁밥을 짓는 동안
알 슬어 수척해진 일 톤짜리 한치배가
달맞이 애기달맞이 작은 창을 지켜봐
나 죽거든 태운 재 저 섬 앞에 부려다오
베에기 솔라니 저립에서 자리까지
청춘의 뼈를 벼리던 바다 아직 미련 남아
공천포 모살판에 검은 눈물 구르는 소리
원래는 바위였을 지귀도 큰 바위였을,
눈물도 돌이 되는 걸 여기 와서 일았네
♧ 베릿내 - 김윤숙
폭포소리 품어 안고
나를 벼랑에 세우네
아득히 발끝 아래
거슬러 온 날이여
끝까지 맞서서 걷는
쟁쟁한 저 물소리
계곡 어디쯤에서
수굿이 잦아들어
성천봉 하늘자락
물빛 건져 올리면
때맞춰 내리는 별들
고이 받드네
젖은 두 손에
*제주시조시인협회 간 『제주시조』 2024, 제33호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정현문학 2024 제9호의 시(3)와 제주수선화 (0) | 2025.02.09 |
---|---|
최기종 시집 '만나자'의 시(10) (0) | 2025.02.08 |
김병택 시집 '아득한 상실'의 시(2) (0) | 2025.02.06 |
계간 '제주작가' 겨울호의 시(4) (0) | 2025.02.05 |
'한라산문학' 2024 제37집의 시(4) (0) | 2025.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