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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라산 문학' 2024 제37집의 시(6)

by 김창집1 2025. 3. 3.

 

 

해지게 카페에서 조선희

 

 

겨울비를 실은 애월바다를 바라본다

옥빛의 바다는 숨었다가 나타나고 웅성거림이 떠다니고 있다

달려오듯 흰 포말은 뭍에 다다르기 전에 바스라진다

햇살 사이 반짝이는 것은 포말의 영혼인가

가야금의 현이 심장을 두들기며 쥐락펴락을 한다

커피의 쌉싸름함이 목젖을 타고 내릴 때

한오백년의 구성진 가락이 구불거리며 함께 나린다

치아바타와 커피 그리고 한오백년

누가 성화를 부리는가

애꿎게 치아바타만 칼로 베어낸다

커피향이 명치끝을 파고들며

회로애락의 구곡간장이 쓰디쓰게 저며 든다

 

 


 

구절초 최원칠

 

 

서리가 내리기도 전에 피어납니다

산과 들에 저절로 피어납니다

꽃자리 아닌 곳에 무더기로 피어납니다

연한 분홍의 꽃잎은 산바람 되어

무심한 가슴 흔들어 놓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산도 외롭고 들도 외롭답니다

감당 못 할 늦가을 오기 전에

무서리 치기 전에

내 맘 받아주오 내 몸 받아주오

 

마른 몸 당신의 베갯속이 되어

오래도록 머물게 하여주오

필 대로 핀 11월의 구절초

순백 꽃잎의 가는 손 심장 위에 얹히면

수수하고 희디흰 내 사랑 구절초여

숨이 멎고 맙니다

 

 


 

보름달 현문길

 

 

밤에 아름다운 당신

화장기 없는 얼굴을 사랑합니다

 

고향 마을 어느 곳

당신을 만나던 그곳에서

오늘 밤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눈빛이 내 정수리에 꽂힐 때쯤이면

파도 소리와 바람 외에 누가 보겠습니까

 

예전 어느 날처럼

그리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2홍연서

 

 

어디서 왔을까

눈시울 적시는 그리움

그 어드메 기억의 조각퍼즐 맞추듯

잠깐 머물렀다 공중부양하는

 

고단한 삶은 실타래로 마냥 헝클어지고

속절없이 내리던 눈발

흔적 없이 사라진 계절

겨울도 아닌 것이 봄도 아닌 것이

오늘은 잿빛

내일은 햇살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밴댕이 속마음 같기도 한

 

잠시 머뭄에 현기증으로 피어올라

미소 머금은 오늘

내일이란 희망의 무지개 걸다

 

 

              *한라산문학회 편 한라산, 보길도를 걷다(2024. 3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