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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경희 시집 '꽃은 꽃으로 답한다'의 시(4)

by 김창집1 2026. 10. 12.

 

♧ 오래된 기억

 

새 사람에 대한 궁금함일까

모두 도끼눈이더라

갓 시집온 며느리

낯설어 미숙하련만

매사 성에 자지 않아 하니

고달프기 그지없더라

한 이불 덮는 남편조차

엄정한 중립인지라

들이쉬는 공기 속에도

둥실둥실 두려움이 떠다녔어라

하기사 오직 제 몸뚱이 하나 건사해 온

살림 경험 일천한 서툰바치이니

자업자득이더라

친정에서 몹쓸은 시누였더니

인과응보더냐

내가 서러운 만큼

저들의 눈에도 연민은 가득 고여있는데

짜디짠 눈물은 어째

내게서만 흘렀을까

하다 섭섭해 말라던 위로의 말도

야속할 따름이더라

스물하고도 아홉 해가 홀렸더라

돌이켜보는 마음에 아쉬움은 여전하더라

씁쓸한 그리움만 희미하게 번져있더라

 



♧ 어버이날

 

억겁의 인연으로 우리가 만나

한 가족을 이루니

 

너와 나의 가슴에

영광의 징표로 선명하게 새겨진

거룩한 그 이름

어버이!

 

사랑합니다

 



♧ 생일 아침

 

너를 낳고 추스른 후

밖을 내다 보니

해가 저만큼 넘어가고 있었구나

 

어릴 적 품었던 염원과 달리

퍽퍽하게 다가오는 삶의 모습에

원망이 앞섰던 한 시절

모래사막 같은 허허벌판

어디가 나의 길일까

두려운 미음 끝없이 곤두박질치니

 

조급함에 허둥거려

걸어도 걸어도

온전히 남지 않는 허무한 발자국

 

이 아침

메마른 가슴 촉촉이 채워줄

진하고 뜨끈한 국물을 끓인다

오롯이 나를 위해

그리고

위해

나를 있게 해주신 어머니를 위해

 



♧ 나의 우체국

 

오래전 나를 이끌었던 우울한 샹송

 

반가운 사람들의 오가는 정을

빨간 우체통으로 이어주는 이곳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가로로 날리는 세로로 선 가로수를

무연히 바라보던 날에도

하얀 눈이 마른 백설기 가루처럼 흩뿌려지던

칼바람 부는 깜깜한 퇴근길에도

변함없이 함께해 준 이곳

 

나의 투정도 외면도 보듬으며

나의 삶이 되어 준 나의 우체국

 

잃어버렸던 사랑은 나를 찾아왔을까?

 



♧ 마음의 발자국

 

까슬한 화선지 위로

와르르 쏟아지는 아우성

 

톡톡 다독이며 내어준 꽃길 위로

쏙 스며 고요히 걸으면

 

꼬옥 누른 자국마다

길게 터지는 숨

 

그것은 붓의 마법, 평안

 

 

 

*김경희 시집 『꽃은 꽃으로 답한다』 (다층, 2026)에서

*사진 : 기을 꽃들, 차례로 돼지감자, 돌동부, 닻꽃, 배풍등, 노랑물봉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