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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이철수 시집 '아버지의 나무'의 시(4)

by 김창집1 2026. 10. 14.

 

♧ 기도의 힘

 

고향 팽나무 아래

지금은 흔적조차 말라버린 집터

허물어진 돌담 틈으로 넘나들던

넋들임 소리

 

어머 넋들라 어머 넋들라

정수리에 침이 살짝살짝 얹히고

울음 끝에 고인 눈물에 어리는

어머니의 놀란 가슴 들썩이는 어깨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어깨너머로 배운 글로 삐뚤빼뚤

합장한 어머니의 손에 젖는

하늘로 보내는 간절한 편지

 

등 쓰다듬는 심방 할망의 넋두리

설운 아기야 설운 아기야

바닥 딛는 힘 잃은 어린 자식

멀리 이국땅으로 보내려 했던 가난

 

빚 독촉에 시달리던 자식 하늘에 빼앗기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한 많은 사연 북받치는 설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유리 가슴아

 

그래도 살아야지

기도는 강철 같아 눈물의 힘으로 부여잡는

신의 손 꽉 잡고 버티는 고집스러운 인내

이제는 여신이 되어 돌아온

어머니 오, 우리 어머니

 

 

♧ 돌이 되다

 

영정 사진 속 친구는 웃고 있다

내 큐대 팔라고 조르더니

정작 당구는 많이 치지도 못하고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당구 치고 져줄 걸

 

내가 이기는 게 그의 슬픔이고

내가 지는 게 그의 기쁨이라면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이제 와서야 안다

 

두 번째 이혼 세 번째 결혼

순탄치 않았던 덧없는 삶

 

화장실에서 쓰러진 오빠의 삶을 한탄하는

여동생의 안타까운 한숨에

서러운 이슬방울이 반짝인다

 

그는 슬픔이 사라지고

웃음이 새겨진 돌이 된다

 

아픔이 굳어 돌이 되어 다시 만날 텐데

아픔이 씻기고 무덤덤해지는 오늘 밤

가슴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돌이 된다

 

 

♧ 사각지대

 

살아보려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주위를 살피고 돌아볼 여유가 없었구나

아찔한 순간이다

범접할 수 없는 비싼 외제 차를 건드렸고

가해자가 되어 사각지대에 갇힌 나

 

집에는 깜박거리는 형광등처럼

언제 꺼질지 모르는 노모가 해맑은 웃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살고 싶다 살아서 밥상 차려야 한다

 

누구 거기 없는가, 조금만 도와줘

진눈깨비처럼 속절없이 사라지는 외침

싸늘하게 식어가는 내 발에 양말을 신기는

노모의 힘겨운 손길만이 따뜻하다

 

노모의 이름으로 된 허름한 집에서

밥이 되지도 못하는 그 집에서

나 먼저 가야 할 것 같아

엄마 미안해

 

 

♧ 이석증

 

돌고 또 돌아, 어지럽다

바위에 눌린 안개처럼

세상이 흐리다

 

중심 잡고 여태 잘 견더왔는데

가까운 곳만 바라보느라

눈을 감아도

쓰러질 것만 같다

 

삶이 흔들리고

어지러울 때면

가까운 곳에 얽매이지 말고

잠시, 먼 곳을 응시하자

 

 

♧ 오월 여행

 

소풍 가듯 자유롭게 떠나보잔다

오월은 가정의 달

부모님 챙기라 어린이 챙기라

부처님 가호까지 챙기려면

가난한 주머니 더욱 초라해져

손이 많이 가는 달

 

그래도 바람과 햇빛이 좋아

뭍으로 여행 가자

 

타국의 어린 신부 맞은 친구

어린 자식 같이 가기로 했는데

추가 경비 힘들었는가

왜 여행이 취소되었는가 질문에

무겁게 가슴 짓누르는 바람

쓴 소주처럼 마시며 토해내는 한숨

어린아이의 자유 지켜내지 못한

오월의 가난

 

여행 내내 목구멍에 맺힌

쓰디쓴 슬픔

 

 

*이철수 시집 『아버지의 나무』 (황금알, 202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