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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원욱 시집 '누가 저 푸른 창을 깨뜨릴까'의 시(3)

by 김창집1 2026. 10. 13.

 

♧ 서골새

 

고향에 살면서 고향이 그리운 날 서골새로 간다

까까머리 총총걸음

숨죽이며 내달리던 열세 살,

뒷덜미를 잡아챌 것만 같은 기운이 서릿발처럼 엉켜서

영문도 모르는 귀신이 흐느낀다고도 하고

고랑 구석구석 인골이 무더기로 나뒹굴었다고도 하는

심장만 콩콩 뛰던

휑한 눈망울 속

외눈박이 새가 될까

짓궂은 도체비가 될까

다가서면 누구냐고,

어디서 왔냐고 물을 것만 같은

거친 어둠 속

누가 지층의 깊은 음계를 툭툭 치고 가는지

본향당 할머니 그윽한 눈빛 따라

고사리손들이 하늘거리는 대로변

아직 떠나지 못한 나그네만 우두커니 서서

돌아보고

또다시 뒤돌아보는

 

---

* ‘시골새’는 제주도 위미마을의 서쪽 개천.

 

 

♧ 동해로 가는 비단구렁이

 

꿈 깨인 새벽, 꽃잎 사이

 

이슬방울에 갇혀서

 

투명한 시공 속으로 데굴데굴 구르다가

 

밤새 바둥대던 누군가의 흔적처럼

 

푸른 비늘 곧추세우고 환한 바다 건너려 하네

 

가뭇없는 간이역,

 

별어곡역 골짝에서 잠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수궁 가까운 정동진역쯤

 

또르르, 또르르…

 

기억을 더듬어 구르고 또 굴러가는

 

 

♧ 뱀처럼

 

슬금슬금 기다가

 

시원의 탯줄 꼼지락거리는 배냇저고리 속

 

고운 할머니 체취처럼

 

오색 비늘 차오른 인간의 마을

 

귀 눈 꼭꼭 닫고

 

옥죄이던 껍데기 벗어던지고

 

깊은 곳

 

우주 비우듯 슬금슬금

 

 

♧ 마라Mara*

 

  설 지나고 오랜만에 글놀이나 해볼까 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데 드르륵, 무색의 창을 흔드는 핸드폰 문자 신호음

 

  -어이, 글 쓰맨, 아직도? 갑자기 슬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 쓰느라…, 고생헙서

 

  누구인가,

 

  오래 붙들던 침묵을 깨뜨리는

  이 아귀餓鬼는

 

---

* 마라Mära는 불교에서, 수행자를 깨달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유혹과 장애의 상징적 존재로 도를 닦는 데 방해가 되는 귀신이나 사물.

 

 

♧ 고사리 속으로

 

  고운 할머니 찾으러 들판으로 나갔다가 손을 잃어버렸습니다 혹시 지난밤 반짝이던 별들에 홀려 깜박 정신을 놓았는가 싶어 주위를 살피는데 도처에 탐욕의 눈들이 번득입니다 한 끼 양식인 고사리를 두고 포연 가득한 공중이 달랑거립니다 영문도 모른 채 잘려 나간 여린 모가지들이 서양 먼 나라 아우성처럼 떠다니고 메케한 안개가 독가스실 적막 같은, 축축한 날은 눈 감지 못한 원혼들이 춤을 춘다고 합니다 사악한 좀비들과 어울려 들판 가득 덩실덩실 미쳐 날뛰는 아뜩한 정신의 저쪽 달뜬 목소리 들립니다 포만감 넘치는 지적생명체들이 자기야, 어디야 많이 꺾었어? 응, 응, 미로 속 통신이 빗발칩니다 까르르 까르르 헤픈 웃음 흘리며 배부른 생귀신들이 지나가고 여백 속으로 슬픈

모가지들이 툭 툭 떨어집니다 멀리서 잃어버린 내 손도 툭 툭 슬픈 소리를 냅니다 돌아보니 지난 밤 꿈자리에서 선혈이 낭자한 송곳니를 드러내던 악귀가 내 가냘픈 모가지를 틀고 있습니다 비명 건너에서 씨익 웃고 있는, 외계에서 온 듯한 날짐승이 공중에 내걸린 나를 바라보며 침을 흘립니다 이때 본향당 할머니 고운 눈빛이 봄비를 뚫고 툭 솟아오릅니다 숨죽이던 풀잎들도 일제히 툭 툭 자리를 잡습니다 마음 둘 곳 없는 참새 고라니 장끼 까투리 모여듭니다 워어이~ 워어이~ 진혼의 노래 울려 퍼집니다 시퍼렇게 눈뜬 작은 삶들이 장엄한 울음에 묻히고 슬픈 것들은 끼리끼리 공중 깊이 길을 냅니다 지상의 푸른 손바닥들이 앞다투어 적요의 길로 나갑니다 행~진 행~진 행진하는 거야…, 들국화의 허스키한 목청이 관중들에게 둘러싸입니다 미여지벵뒤 근처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키 작은 미물들 살풀이하듯 마지막 손을 흔들던 나는 정신을 가다듬어 기어코 미혹의 숲을 헤치고 나왔습니다 거친 손에 들린 여린 고사리 한 줌, 할머니 심안으로 텅 빈 노을이 무심히 내려앉습니다

 

 

                *김원욱 시집 『누가 저 푸른 창을 꺠뜨릴까』 (애지, 202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