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초대석]
♧ 용추폭포
살다 살다 거침없이
추락하는 도도한 생(生)
떨어져 솟구쳐서 흘러가야 길이 된다
눈 뜨고
뛰어내리는
부서져서 더 눈부신
[초대작품] - 울산불교 문인협회
♧ 수미단, 극락전에 있고 - 도순태
백흥암 수미단을 보러 갔다
모든 문이 닫혀있었다
푸른 고요만 앉은 보화루
반쯤 내려온 그늘 색이 되고 단청이 없다
고졸미에 범접할 수 없는,
배롱꽃 수북한 붉음은 멀찌감치 서 있었다
초파일과 백중날만 산문 열어
무시로 오면 낭패다
팔공산 바람이 수시로 드나드는 저 담장 안
나의 궁금함이 담을 따라 녹음처럼 출렁거렸다
수미단 극락전에 있고
청적(靑赤) 단청 겹겹이 사방 피어나는
♧ 그 가을, 해인사 – 서금자
산천은 응접실을 꾸며 놓았다
하늘을 솔숲에 걸쳐 놓고
떡갈나무 잎 보료를 만들고
햇살조명 프리즘이 가을로 눈부시다
해인사 바라기 팔만 장의 잎새들
목탁소리 몸짓으로 경전을 전한다
단풍나무 저 붉음은
뻐꾸기 짝 찾다 토해낸 울음이라고
은행나무 저 노랑은
책갈피 연서를 꿈꾸다 밤잠 설친 속앓이라고
안 이 비 설 신의 잠재운 빛이란다
견뎌야 화려한 무엇이 될 수 있다고
재워야 곡진한 울림이 될 수 있다고
그곳 한나절
골미창*이던 마음에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간절한 꽃울림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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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미창 : 좁고 막다른 골목의 안쪽 구석.
♧ 통도사 가는 길 - 김동관
굽은 시간 거슬러 소나무 길 걷는다
허공이 깊을수록 바람 소리 적막하다
풍경도 울리지 않는 눈물 마른 사연들
밟고 간 금강계단 난간에 내려놓고
우듬지에 고인 달 산 그림자 따라간다
노승은 녹슨 향로에 푸른 불꽃 사른다
♧ 수군포* - 이영필
농촌 글짓기대회 상으로 받은 삽 한 자루
부끄럼 수북하여 대문 삐죽 열었을 때
누런 이 내보이던 당신 술빵처럼 특별했다
삽날 끝은 잠잘 때도 땅을 보며 서서 잔다
작은 버석거림 소리에도 귀를 열고
물꼬를 보러 나가던 아버지는 삽이었다
삭신이 쑤시도록 나무 심을 땅 파다가
숫돌처럼 굳은 손 쥐고 참 많이 울었을 거다
이 세상 뒤집어엎어서 바꿔놓고 싶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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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포 : 말모이 406페이지.
*혜양문학회 간 『혜향문학』 2023년 하반기호(통권제21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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