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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동인지 '한라산문학' 제36집의 시(3)

by 김창집1 2024. 1. 21.

 

 

목마르기 전에 김대운

 

 

따사로운 햇살

반갑지 않은 파란 하늘

밟으면 흙먼지가 자욱한 길

짙푸른 잎새는 마음 타는 듯

제 모습을 서서히 감추기 시작한다

 

들녘의 그늘진 농부

하늘 쳐다보며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을 그리워하지만

하얀 구름은 가을바람에 여유롭다

 

목마름 멀리하고

시간에 쫓기든 큰 걸음으로 도착한 곳

어린 단풍나무 곁에 앉아 물 마시니

마셔도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

 

지나온 시간 돌이켜 보면

정면을 향해 내달리는 멧돼지처럼

목마름이 올 때까지 기다린 삶의 흔적들뿐!

 

발밑 먼지 가득 품은 질경이

당신을 기다리지만

해와 속삭이는 뭉게구름 미워하지 않고

밤이슬 기다리며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낮잠 김도경

 

 

아침과 저녁의 모호한 경지에서

학교에 가려고 책가방을 쌌다

 

붉게 물드는 서쪽 하늘을 보며

어머니가 웃었다

 

탱자나무 가시울타리 너머 그 여름

키가 큰 칸나는 속절없이 붉었다

 

비몽사몽 짧아지는 가방끈

몸이 자라고 머리카락 희어졌다

 

귓전에서 맴도는 어머니 웃음소리

백세시대 인생 2회차

 

가방끈을 늘려도 늘려도

허기가 진다

 

 

 

 

이슬 꽃 - 김미량

 

 

풀잎에 맺힌

이슬 꽃 방울방울

하늘이 뿌려 준

눈물방울이라는 것

 

나무와 풀이 함께

기대어 있을 지라도

꽃과 바람에 의지한 채

울고 있다는 것

 

잠깐 피었다 지는

이름 모를 들꽃들에게

알알이 밝힌 이슬 꽃

 

아픔은 그리움이 되고

멍울로 남아

속울음 참고 있다는 것

 

 

 

 

구엄 고내지구 김정희

 

 

느리게 가는 날

너울이 느리게 바다를 끌고 섬으로 온다

먼 바다에선 흔들리지 않다가

새의 군무처럼 바글거린다

 

구엄에 설레던 친구 집이 있다

달처럼 내려앉던

손으로 받쳐 밤 세웠을 시간을 가지 젊은 그때

부표가 선 바다가 보이는 절벽 끝마다

바싹 추워 바들거리는 순비기 꽃 와르르 피었다

 

사람이 끊긴 밤길에서 동동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집 나간 어머니 기다리던

먼 친척 아이 시린 볼처럼

입에서 호호거리며 온몸으로 추웠던 시간이

너울거리며 지난다

바다의 짠내 앞에서만 피어나는 운명을 거슬러

뭍으로 기어오르는 숨비기꽃을 탓할 수 없다

 

 

 

 

상사화 - 김항신

 

 

무릇, 이맘때면

당신이 서 있습니다

 

창을 열면

당신 모습 닿을 듯하다

까마득해

 

내가 가면

그대 떠나고

그대는 오고

 

창을 열면

꽃무릇, 당신은 없고

 

내가 그 곳에 있습니다

 

닿을 듯 보일 듯하다

일 년이던 빈자리

 

모란(母蘭)이 동백이

그리움만 쌓입니다

 

 

          *한라산문학동인회 간 한라산에서 보말을 캐다2023(통권 제3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