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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수풀문학' 2023년 제18호의 시(1)

by 김창집1 2024. 1. 23.

 

 

          [초대시, 시조]

 

 

마샬라 타임 이명혜

 

 

나에게 손 내밀어 본다

 

피어나는 꽃

지는 꽃 그리고

꽃이 되고 싶은 풀 사이에 앉아

 

아무도 용서할 수 없는

나를 슬그머니 용서하고 있다

 

에 새겨진 운명길 따라

뒤뚱거리던 우리들의 일상

 

향신료 뒤섞인 커리처럼

밋밋한 내 삶에 양념을 하고

영화 중간에 모두 일어서

떼창을 부르며 춤추는 희 로 애 락

 

신이 원하던 대로 살았던 그대

잠시 일하던 일 놓고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어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바람 되어라

 

죽어야 끝이 나는 런닝 타임

웅크리고 앉은 지루한 뼈마디 같은 삶

온몸으로 아우성치는 별똥별 되어

저마다 화려했던 자기 몸 폭로한다

지금과는 다른 배역 캐스팅되길 기도하며

 

나도 조금 다른 인생에 손 내밀어 본다

 

 

 

 

삼승할망의 밤 - 현택훈

 

 

   눈 내리는 저녁이었다 월림리로 아기를 받으러 갔다 초산이었다 산모가 숨넘어갈 듯 신음했다 다행히 산모도 아기도 건강했다 수술 가방을 보건소에 두러 가는데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금악리였다 눈보라가 거세졌다 하지만 지금 아이가 봄을 향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눈 속을 뚫고 도착한 집에서 아이는 이 세상에 나왔다 자정이 지났는데 다시 눈길을 걸었다. 하룻밤에 세 번의 빛을 본 날이다 눈이 정말 따뜻했다

 

 

 

 

할아버지 판결문 - 김정숙

 

 

수박서리 꼬맹이들 할아버지 부르셔

더러는 냅다 뛰고 쭈볏쭈볏 몇은 불려가

들을라 새가 들을라 이름은 덮어두고

 

손 잡히는 데 있는 이 아이는 야의

말 들리는 데 있는 저 아이는 쟈의

숨어서 보이지 않는 그 아이는 가의

 

야의 쟈의 따고?

망은 가의가 보고?

 

허허 이 멩랑한 작당은

야의 쟈의 가의냐?

 

다시 또 들어오켕 ᄒᆞ민

일름 ᄃᆞ라멩 놔두마

 

 

 

 

억새 밑동 - 김희운

 

 

오름 자락 가을은 깊어

억새는 납작 웅크리고

청가시덩굴 긁힌 상처 덧나 앉은 딱지도

불 꺼진 화구 속으로 슬금 슬쩍 숨었다

 

높바람 매서워도

아직 눈발 날려도

흘리듯 한 줌 햇살은 흙 붉은 능선 따라

화산탄 사태 난 흔적들 밑동부터 메워 간다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 문학2023(통권 18)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