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모사 – 방순미
살다 보면
독인 줄 모르고 산다
살다 보면
독에 중독된다
몸 그림자 사라진다 해도
두려움 없을 중독
가엽고 가여워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더러운 피의 양이 되리
독으로 받은 상처
별이 될 때까지
♧ 도라지 꽃 – 송미숙
우산을 받쳐 들고
보랏빛 연정으로
길동무 찾아서
골목길 서성이는 여인 되어
방글방글 미소 지으며
마중을 나와 보니
보슬비 내리는 날
부푼 마음 부둥켜안았더니
물거품 되어
사그라질 것을
♧ 끝물 – 윤순호
내내 붉게 타더니
무서리에 하나둘 단풍 지고
장렬하게 솟은 늦깎이 가지에
서둘러 핀 선홍색 몇 송이
보란 듯 늠름하구나
스스럼없이 노니는 고추잠자리
갸우뚱 시선도 사로잡고
유모차가 이끄는 등 굽은 할머니
곱구나 곱구나!
감춰 둔 추억 불러 가물가물 머물고
길고양이 담벼락 졸음 위에
나부끼는 깃발
장미야!
♧ 통영 – 채영조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달려온 곳
한 없이 그리움이 물결치는 곳
끝없이 펼쳐진 바다 저 멀리
너는 가고 나만 남았네.
사랑은 가고 청춘도 저물어
애달픈 마음 달랠 길 없어
미륵산 정상에 올라
한려수도 바라보며
잊혀진 이름 하나 불러본다.
아! 가고 오지 않는 것은
세월만은 아니었네.
♧ 명중 - 한인철
눈을 뜨고도 눈을 감은 것처럼
앞길이 막막할 때는
그늘진 개미집 위에 앉아서
때때로의 먹이로
무리의 행로를 유도하듯이
단숨에 여유를 산출할 수 있다면
스스로에 갇힌
골몰의 세상에서 벗어날
변화의 차분한 변화의 운용술이다.
먼 거리일수록
장총이 명중도가 높은 것처럼
서두름 없이
사랑도 예술도 평화도 행복도
숨은 정 하나둘에 넌지시
미리미리 하루하루
봄이 바라보는 가을처럼 해 볼 일인데
오발탄에다 술술술
또 헛 나와 버린 마지막 구호
* 월간 『우리詩』 1월호(통권427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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