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월간 '우리詩' 1월호의 시(4)

by 김창집1 2024. 1. 31.

 

 

꽃으로부터의 사색 1 - 강동수

      -상사화

 

 

일찍 찾아온 봄으로부터

땅은 가슴을 열어 보인다

그 속에서 긴 동면의 시간을 여물어

사랑 하나쯤 품고 있었지

꿈틀거리며 피어오르는 힘은

대지를 뚫고 자신의 영역을 나타내고

아무도 침범치 않는 구역에 터를 잡고

햇살이 따뜻한 날

문득 생각나는 이름처럼

봄을 생각나게 하는 싹들이 얼굴을 내민다

잎이 지도록 숨어 있는 꽃은

언제쯤 나타나지

 

시간의 간격을 뛰어넘어 훌쩍

피어나는 꽃들

잎들이 벌써 사라진 터전 위에

영원히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피워내는 붉은 꽃

 

 

 

 

삼중주 김정식

 

 

이별 후에 슬픔보단 아름다움을 알았다

첼로가 아기를 품듯

 

배경이 되고

전경이 되고

 

비가悲歌가 나올 때

서로를 다독여 준다

 

건반의 파도가 밀려오고

이별의 어깨 위에 바이올린을 다독여 준다

 

 

 

 

오리온 여영현

 

 

그래 나는 안다

이 작은 행성에도 여름과 겨울이 있고

진통제와 수면제를 삼키는 시간이 있어

천체는 밤에도

불을 끄지 않는다

 

성운이 어두운 쪽은 작업복을 갈아입는 사람의

시간이거나 나처럼 첫 문장을 시작하려는 사람의

기다림이다

 

하얀 입김을 불며 차고 얼얼한

뺨을 비빈다 삶은 스스로 발화하는 것,

그건 별이 반짝이는 원리와 같다

 

바람이 매끈한 빙질의 천정을

쓸고 지나가는 거기

오리온자리가 선명하다

네모난 방에서 숨 쉬는

식구 같은 별이 하나, , …….

 

태양계에서 천오백 년 떨어진

별자리다

 

나는 천오백 년을 기다린 사람처럼

어둠 속에서 환해진다.

 

 

 

 

송광사 채영조

    -불일암 가는 길

 

 

마음이라는 것은

그리운 사람의 방향으로

열려 있다.

 

마음이 어렵게 내어 준

길을 따라 나선다.

때로는 애틋함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이글거리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면

땀방울이 비 오듯

등골을 타고 내린다.

모든 것 내려놓고 걸어야 하는

무소유 길에서

모래알 같은 욕망 하나

쉽게 벗어던지지 못하고

굳은 절개 하늘 향한

대나무 숲 사이를 헤치고

불일암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

 

후박나무 아래 입적하신 법정스님이

죽비로 등을 세차게 후려친다.

 

, 무소유

 

 

 

 

바람이 누운 자리 전선용

 

 

  게으름을 하영 피우면 등에 거미가 서식한다. 물 묻은 비누처럼 세월이 벗겨지고 예술은 거품으로 사라진다. 부고장 같은 고요는 적막을 부르고 들리지 않는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닐 때 무릎에서 수박 걸리는 소리가 났다. 오는 것과 가는 의미가 풍향계 같아서 손가락으로 너를 가리키는 바람, 온기 잃은 이름이 서성거리다 힘을 잃고 주저앉는다. 이별의 중량을 아는 사람은 바람을 탄다. 민들레 씨처럼 가볍다는 것, 더는 바람을 느끼지 못할 때 그곳이 홀가분하지 않다는 것을, 손을 그러모아 뼛가루 같은 꽃씨를 담는다. 내년에는 봄이 오지 않아 꽃은 피지 않을 거야. 심장이 투박스럽게 말을 한다. 바람은 죽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월간 우리20231월호(통권 42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