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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한수풀문학' 2023 제18호의 시(2)

by 김창집1 2024. 2. 3.

 

*입춘굿에 등장하는 영등할망

 

 

  [특집] 한림에 숨 쉬는 신화 이야기

 

 

영등할망 고성기

 

 

얼마나 기다렸으면

입춘까지 못 기다려

초하루 귀덕 포구

버선발로 내리셨나

치마폭

감추어둔 봄

삐죽 고개 내밀었다

 

겨울이 할퀴고 간

상처를 보듬으며

하늘 땅 바다까지

두 손에 움켜쥐고

섬사람

마른 가슴에

봄의 씨앗 심었다

 

비우고 다시 채워

넉넉한 이 바다를

돌아서 다시 보며

소섬 포구 떠나는 날

북 쳐라

장구도 쳐라

이 섬 가득 여물도록

 

 

 

 

버림받는 공간 속에서 문태후

 

 

키 큰 나무

나뭇가지에 걸림으로

언뜻 드리우는 기운은

수많은 두 손 비빔에 울림이리

 

신과

귀신 사이

햇살과 그림자 사이에

극과 극

틈새로 다가서려는

멀리에서 저 먼 곳에 부름으로

 

작은 심지에

불을 밝히면 합장하듯

흐르다 멈추어버린 촛농이 흐르면

다시금

촛불은 가볍게 흔들린다

 

끝나지

않을 여정이니까

끝을 모르는 길이니까

 

어디로

어쩔 수 없는

공간 속에서 혼돈 속에서

버림으로 이어지는 혼탁 속에서

 

나뭇잎 떨어져

띄엄띄엄 퍼즐을 맞추어가듯

쉬엄쉬엄 찾아가야지

 

 

 

 

당올레 양민숙

     -새미하로산당 가는 길

 

 

언제나 비좁은 틈이라고 했어요

틈이 넓으면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져서 경계가 필요하다고요

말소리가 커지고 발자국 소리도 요란하다고요

새 소리와 대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반가움이 아닌 경계의 소리라고 했어요

아는 체하는 것들에게 속지 말라고요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은 예의를 갖춰요

두 개의 귀가 모자라 몸 곳곳에 새로운 귀를 만들어요

당신의 속삭임은 더 위를 바라보게 만들어요

하늘을 받쳐 든 저 신목은

당신의 내력을 얼마나 지키고 있을까요

탯줄 잘릴 때부터 등뼈 눌려 꼬부라질 때까지

그늘 만들어 기다리고 있다지요

잠시 활을 내려놓으세요

땅을 고르고 자리를 만들어 드릴게요

다시 경계의 새 소리가 날 때까지

고단한 어깨를 위해 노래를 들려 드릴게요

이제 들어가요, 당신의 구역으로

 

 

*복덕개에 세운 영등할망상

 

 

아이야,

     영등달이 떠나야 비로소 봄이 온단다 한요나

 

 

복덕개로 영등할망 오실 때는

18천 빛깔 바람을 몰고 온단다

그렇게도 많은 바람이 부는

영등달은 잠시 쉬어가야지

 

영등할망은 주머니에 귀하게 담아둔

오곡의 씨앗과 꽃가루는 들에,

생선과 소라와 전복의 씨를 바다에

고루고루 뿌려주신단다

 

아이야, 영등할망 섬에 오시면은

혹독할 만큼 매서운 날씨지만

봄의 시앗들이 심어진단다

영등할망이 떠나야 비로소 봄이 온단다

 

 

               *한수풀문학회 간 한수풀문학(2023, 18)에서

 

 

*귀덕리 복덕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