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해녀자격증 - 김영란
잘 배우고 잘 났으면
해녀가 됐겠냐
배움 없고 가진 것 없는 네 아방 만나서 맨몸으로 할 거라곤 물질밖에 없어서 너 낳고 사흘 만에 물질했다는 우리 엄마 팔순 넘은 나이에도 현역을 자랑하며 학교마당 안 밟아도 자격증이 있다며 주머니 속 해녀증을 자랑하는 우리 엄마 박사를 받아봐라 유학을 가봐라 어디서 이런 자격증 받아올 수 있겠냐 그만 두라 하지 마라 난 아직 서열 3위 내 위에 1, 2위 언니들도 있다며
하늘이 해고하기 전 사직은 안 허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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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한다’의 제주어
♧ 마중 – 김윤숙
바람이 때리고 간 얼굴도 얼굴이지만
부르튼 손 감추려 수세미로 문질러
벌겋게 오르던 핏발
허리춤에 감추고
얼렸다가 또 풀리는 막 틔운 어린잎에
이제 그만 돌아서려 추적대는 싸라기눈
벗을까 더 껴입은 옷,
누가 여태 망설이나
*장 미셀 오토니엘의 '아쿠아마린 블루와 호박색 인도 거울 유리', 2021.
♧ 구슬 거울 - 문순자
-장 미셀 오토니엘
구球는 어디서든 날 비추는 거울이었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 한가운데
구슬 속 나를 찍다가 나를 찍는 구슬을 보네
수많은 거울 속에 대책 없이 갇혀버린
사방에서 나를 보는 내 모습이 민망해서
그 자리 얼굴을 들고 서 있을 수 없었네
♧ 쉰다리 – 장승심
가만 앉아 있어도 끈적이는 더운 여름
얻어온 쉰다리 한 병 반가움이 번쩍 인다
요거를
잊고 있었구나
그래 니가 최고지
살레에서 쉰 밥 찾아 누룩 잘게 으깨놓고
물 붓고 놓아두면 발효되어 뽀글뽀글
재탄생
보리 요거트
막걸리 맛 간식이었지
오늘은 쉰다리에 얼음 퐁당 띄워놓고
옛날을 음미하며 어린 날을 마시네
아끼며
오늘을 이룬
조상 지혜 감탄하며
♧ 보리밭 – 장영춘
혼자 있어도 혼자 아닌 것들이 있다
바람 부는 가파도 청보리밭에 서 있으면
광화문 외치는 함성 도미노처럼 일어서는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2024년 제1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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