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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3년 제14호의 시(5)

by 김창집1 2024. 2. 12.

 

 

엄마의 해녀자격증 - 김영란

 

 

  잘 배우고 잘 났으면

  해녀가 됐겠냐

 

  배움 없고 가진 것 없는 네 아방 만나서 맨몸으로 할 거라곤 물질밖에 없어서 너 낳고 사흘 만에 물질했다는 우리 엄마 팔순 넘은 나이에도 현역을 자랑하며 학교마당 안 밟아도 자격증이 있다며 주머니 속 해녀증을 자랑하는 우리 엄마 박사를 받아봐라 유학을 가봐라 어디서 이런 자격증 받아올 수 있겠냐 그만 두라 하지 마라 난 아직 서열 3위 내 위에 1, 2위 언니들도 있다며

 

  하늘이 해고하기 전 사직은 안 허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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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한다의 제주어

 

 

 

 

마중 김윤숙

 

 

바람이 때리고 간 얼굴도 얼굴이지만

부르튼 손 감추려 수세미로 문질러

벌겋게 오르던 핏발

허리춤에 감추고

 

얼렸다가 또 풀리는 막 틔운 어린잎에

이제 그만 돌아서려 추적대는 싸라기눈

벗을까 더 껴입은 옷,

누가 여태 망설이나

 

 

        *장 미셀 오토니엘의 '아쿠아마린 블루와 호박색 인도 거울 유리', 2021.  

 

구슬 거울 - 문순자

     -장 미셀 오토니엘

 

는 어디서든 날 비추는 거울이었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 한가운데

구슬 속 나를 찍다가 나를 찍는 구슬을 보네

 

수많은 거울 속에 대책 없이 갇혀버린

사방에서 나를 보는 내 모습이 민망해서

그 자리 얼굴을 들고 서 있을 수 없었네

 

 

 

 

쉰다리 장승심

 

 

가만 앉아 있어도 끈적이는 더운 여름

얻어온 쉰다리 한 병 반가움이 번쩍 인다

요거를

잊고 있었구나

그래 니가 최고지

 

살레에서 쉰 밥 찾아 누룩 잘게 으깨놓고

물 붓고 놓아두면 발효되어 뽀글뽀글

재탄생

보리 요거트

막걸리 맛 간식이었지

 

오늘은 쉰다리에 얼음 퐁당 띄워놓고

옛날을 음미하며 어린 날을 마시네

아끼며

오늘을 이룬

조상 지혜 감탄하며

 

 

 

 

보리밭 장영춘

 

 

혼자 있어도 혼자 아닌 것들이 있다

 

바람 부는 가파도 청보리밭에 서 있으면

 

광화문 외치는 함성 도미노처럼 일어서는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2024년 제14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