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사목 3 – 박소원
가지마다 반짝이는 별을 바르고
아침을 맞이하면
나는 별의 지도가 된다
이런 날이면
나는 죽음 너머의 세계가
더욱 궁금해진다
너로부터 먼 곳에서
가지마다 별자리 이름을 갖고
나는 너의 울음을 닮아간다
네가 목 놓아 울고 떠난 이 땅에서
새들이 사라지고, 부은 발등 위로
길 고양이 한 마리 올라앉았다
네가 울고 있는 동안은
나의 가장 높은 곳이
너의 가장 낮은 곳이 되곤 했다
♧ 12월의 만다라 - 김미외
하루하루 덜어 내며 걸어온 날들이
창틈으로 스민 햇살의 원기둥 속을 떠돈다
네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
너로부터 멀어지기로 했던 어느 날처럼
숨기지 못하는 후회의 두툼한 의식들이
뿌옇게 흐려지는 무늬를 그리며 궁리 중에
쌓인 무게 이기지 못해 털어내는 생솔가지의 눈처럼
앙다문 입술에서 흘러내린 지난날이
동백꽃 빛 멍울로 채색되는 아찔한
언제나 상투적인
12월의 붓질
파도는 불씨 피우겠다고
몸을 솟구치며 저리 철썩이는데
♧ 눈 – 김정옥
하늘이 붓을 들었습니다
점묘파처럼
콕콕콕 점을 찍다가
점을 찍다가
하얀색으로 칠하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색이 지워지니
꼭짓점을 짓고 부딪히던 마음도
부드러운 곡선을 갖습니다
모두 둥글둥글 어우러집니다
다 같이 빙그르 빙그르르 왈츠를 춥니다
♧ 새날 – 김혜천
나침반이 있어
미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기 위하여
나침반이 만들어졌다 하였습니다
정중正中을 향한
바늘의 흔들림처럼
숱하게 잘못 들어간 길에 대한
희억唏憶은
다음을 향한 연금술이라 위안하면서
새날을 엽니다
청룡이
여의주를 물기 위해 질주하듯
그곳을 향하여 오늘을 밟고
걸어가는 마음 길 멈추지 않겠습니다
♧ 황도 - 김희정
태양의 둘레를 돌면 아찔했다
시간이 갈수록 혼돈에 빠졌다
36.5도의 체온을 벗어나면서
모든 것이 희미하다
아득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어둠에서 쏟아낸
열기뿐
흐느적거리는 몸은
복숭아 향을 그리워했다
한 입 베어
달착지근한 추억 찾을 수만 있다면
공전하는 열이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월간 『우리詩』 2월호(통권 428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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