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이 내리어
자구리 해안의 오후에 빛이 내리어
바다 이랑에 음표를 달아주시고
음표들이 노래를 부를 때
겡이들이 돌 틈에서 기어 나와
아이들 물장구치며
물보라 같은 웃음소리 무지개 걸렸네
자구리 해안의 오후에 빛이 내리어
고운 명주 실오라기 같은 햇살로
물비늘 만들어 주시고
물비늘들이 한데 어울려 어깨춤을 추네
자구리 해안의 오후에 빛이 내리어
은박지 한 장 펼쳐놓으시면
어데서 가마우지 한 마리 날아와
가난한 화가의 전설 같은
추억의 별 가루를 줍는다
♧ 아름다운 능선
- 김성준의 ‘빛은 흐르고’ 사진전을 보고
사막을 건너온
낙타의 등 같은
조랑말의 능선
초원을 날리던 오름을 닮아가는 곡선 위에
빛이 흐른다
어둠을 밀어내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바람 따라 가지를 뻗듯
고개 숙인 그의 꿈이
꿈틀거린다
듬성듬성 늘어진 갈기 뒤로
오름을 닮아가는 그의 등허리가
시리도록 아름답다
♧ 외딴곳
연일 대설 주의보
외딴곳에 고립된 돌담집
온 세상 하안 눈으로 덮인
고요 속에
참새 발자국 하나 없는
고립된 섬
저녁연기도 피어오르지 않는
가족의 안부조자 끊긴 곳
바람의 구슬픈 노래만이
가지를 흔드는
외딴곳
깊은 수렁 속에 빠진 듯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침묵이 쌓여간다
저만치 손끝 내미는
마른 풀같이
내일은 따뜻한 마음이
너를 향한 길을
내어주리라
*김순선 시집 『어느 토요일 오후』 (한그루, 2024)에서
'아름다운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간 '제주작가' 봄호의 시(1)와 아그배나무 꽃 (1) | 2024.04.26 |
---|---|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6) (0) | 2024.04.25 |
임채성 시조집 '메께라'의 시조(4) (0) | 2024.04.23 |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5) (1) | 2024.04.22 |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4) (1) | 2024.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