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전할 곳 - 강덕환
식약처 인증 마스크 먼저 사려고
줄 서서 기다리던 약국 앞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천 쪼가리 저것이
바이러스를 차단하고
그나마 귓바퀴에 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사회적 거리를 두며 줄 선
보건소 선별진료소 앞에서
눈물이 찔끔했다
콧구멍을 쑤시는 면봉이
바이러스를 잡아내고
인류를 구원하고 있구나
자가 격리 잘 견뎌 이뤄낸
생활지원금으로 찾아간 식당에서
그의 식솔 부음에
눈물이 울컥했다
위로의 주먹악수 나누긴 했지만
하마터면 마음만 전하고
계좌입금을 깜빡할 뻔했다
♧ 풀꽃 – 강봉수
꿈에서 깨어 세상을 본다
마주하는 것들이 너무 높다
그런 너를 마주하기 위해
나는 몸을 낮추어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그래서야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고귀한 아름다움의 존엄한 자리가
가장 낮은 곳에 있음을 본다
이름 없이 지상을 떠받들고
밟히고도 다시 일어서서
빛이 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
다시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 나는 감정 있는 치킨입니다 - 고영숙
절벽 아래 흙더미 속에서
닭 뼈가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사람보다 떨어진 닭 뼈가 많았다
원래 그곳의 혈통들은 날아다니며
치킨공화국이라 불리었다
주먹 쥔 뼈들의 잔해 속에서
닭다리가 먼저인지 날개가 먼저인지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한 족속들이
파닥거리며 공회전을 하고 있다
물컹거리는 쓰레기 비닐 사이사이
갑이 되지 못한 종속적인 을의
먹다 남긴 극단의 희망과
유통기한 넘은 꿈들이 발견되었다
달걀껍질마다 금이 간 경력이 그어지고
생일날 이력서를 들고 뛰어내린 뼈
기간제 시간을 살다 한순간에 버림받은 뼈
달빛노동을 하다 스러진 뼈
현수막으로 나부끼다가 스스로 날개를 접은 뼈
발버둥 치던 이름 없는 뼈들이 너덜거렸다
사람들은 먹자고 한 일이라 속죄는 하지 않았고
식욕은 돌림노래가 되어 유행처럼 떠돌았다
배달의 역사는 늘 아찔한 속도이지만
무책임한 약속은 손끝에 오래 남았다
종종 식어버린 그들의 희생을
조각조각 씹어 대는
우리는 한 무리였다
♧ 쭁? - 김경훈
너도 잘 알겠지만, 쭁이라고, 좀 천한 말이지만, 당구칠 때 많이 사용하는 말인데, 영어로는 고상하게 키스라고 하지, 쭁이 나서 안 맞는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쭁이 나서 맞는 경우를, 일본놈들 말로 후루꾸라 하고, 영어로는 플루크라나 뭐라나, 그러니까 너는 쭁으로 왕이 된 거니까, 그야말로 최고의 후루꾸지, 그런데 니가 좋아하는, 일본놈 말로는 얼간이라고 한다는데, 아는지 몰라, 좌우간 우리는 멍멍이를 부를 때도 쓰고, 결정적으로는 끝이라는 의미도 있어, 너 쭁났다고!
*계간 『제주작가』 봄호(통권 제8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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