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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의 시(완)

by 김창집1 2024. 12. 16.

 

 

채식주의자

 

 

내 안의 짐승을 길들이기 연연함에

 

남은 생 봄과 이슬, 풀잎 상처 더하여

 

새김질 초식의 향기 그 또한 짐승이 되리

 

 


 

동행

 

 

함께라는 너의 말

애써 외면했는데

 

기어코 눌러앉아

가을 귀를 얹히네

 

쯔쯔쯔 풀벌레 소리

빈집에 들어찼네

 

 


 

진위

 

 

스치듯 만남에도 궁금한 이유 있어

 

고향이 어디예요, 이곳 사람 안 같아요

 

한참 후 촌스럽다는 말뜻,

내 마음의 낯섦이다

 

벼린 풀 다 눕도록 베인 손도 아물어

 

쭉정이 바싹 마른, 숨겨둔 마음 언덕에

 

섬 억새 가을볕 들녘

그림처럼 들여놓다

 

 


 

우포늪

 

 

새벽은 안개 속에 무엇을 숨겨두었는지

 

자꾸만 헛짚는 희미한 늪의 그림자

 

기꺼이 내어주는 등 불쑥 업히고 말아

 

젖은 땀내 익숙히 걷어내는 물안개

 

젊은 날의 어머니 창포물 게운 입덧에

 

저 흡반 끌려 들어가 뜨거운 중심 이다

 

물풀의 일렁임 같은 아이들의 발바닥

 

비로소 보이는 세상의 꿈틀거림에

 

암호를 풀어헤치는, 오래된 그녀의 속곳

 

 


 

목차에 빠진 저녁

 

 

버리기 아까워서 붙여둔 시가 있다

 

작은방 열 살 벽에 단물 빠진 껌처럼

 

까맣게 얼룩지도록,

 

질근질근 잇몸에 낀

 

 

               *김윤숙 시집 저 파랑을 너에게 줄 것이다(가히,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