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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의 시(14)

by 김창집1 2024. 12. 14.

 

 

먹쿠슬낭

 

 

여기 먹쿠슬낭이야

 

어디라고라고?

 

여전히 먹쿠슬랑

 

닭 먹구설랑 오리발 내미는 것도 아니고

 

월 먹구설랑

 

월 먹쿠슬당

 

네 눈같이 작은 보라색 꽃, 멀구슬나무였다니

 

그때 그 찻집에 가고 싶다

 

그 환한 미소,

 

보고 싶다

 

 


 

가지 끝에 매달린 눈

 

 

떠도는 별들이 몰려와

무지갯빛으로 깜박이고 있는 게 쥐 눈이었어

 

이빨을 갉아 구명을 만들고

어둠 속에서 시간의 출구를 찾아 안구를 밝히는

 

길은 헤아릴 수 없이 뻗은

수많은 나뭇가지 끝으로 나 있고

몰래 매단 기도문처럼 영롱한 물방울이

쥐똥나무를 환하게 밝히네

 

어둠 속에 몸을 담그고 물감처럼 풀어져

아무것도 밖으로 쏟아내지 못하고

몇 날이고 캄캄해져 있었어

제 눈 안에서 불안하게 빛나던 눈

살그머니 몸을 물 밖으로 던져보는데

 

눈이 부시다

어둠의 형식에 안주하면 어둠뿐이야

쓸데없이 망상 같은 발톱들이 자라고

입술을 뚫는 이빨만 자라지

무거운 어둠을 벗기고 눈을 떠야 해

 

, 밝다

비 온 뒤 쥐똥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저 쥐의 눈

 

 


 

우리 함께 살아요

 

 

누군가 개양귀비 꽃밭에서

한 움큼 명아주를 뽑아 던진다

꽃들 사이에서 넌출넌출 춤추던 풀이

느닷없이 뿌리가 들려 내던져졌다

 

용서할 수 없는 풀

 

꽃다발에 푸른 가지가 조화를 이루듯

빈틈을 메우고 삶이 스며든 풀인데

그것도 눈 밝은 이에겐 가시가 되어

뽑지 않으면 안 되는 아픔이었나보다

 

작년 거기가 제자리였던

코스모스가 섞이고

어디서 묻어왔는지 간간이 엉겅퀴까지 있는데

꽃이 아니라고 명아주는 버려졌다

 

머릿밑이 훤히 보이는 빈터를 메워주는

푸르름으로, 풍경을 어우를 수 있는데

코스모스와 엉겅퀴와 명아주와 함께

 

 


 

바나나 맛 우유, 하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른 아침에

반짝 불이 켜지며 문자와 함께

작은 선물이 도착했다

 

은근히 당겨 올려지는 입꼬리를 물고

잘 그려지지 않는 사람을 떠올린다

한 번 더 기억해 주길 바라는

고객이 되기 위해서

 

바나나보다 달콤한 시원한 바나나 맛

유년의 기억이 펄럭인다

 

어느 순간에 각인된 별 하나

엄마가 쓰던 낡은 삼베 조각보가 떠오르듯

뜬금없이 먹고 싶어지는 자장면

연결고리도 없이 그려지는 풍경 속에

환히 웃고 있는 모습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행운의 편지 보내듯

바나나 맛 우유, 하나 보냅니다

 

 

                *조직형 시집 천 개의 질문(서정시학, 202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