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8)

by 김창집1 2024. 12. 23.

 

 

저녁 부두 김병택

 

 

작은 물고기들이 해초를 피하며

몰려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온종일 여객선을 바라보며

매표소 건물 옆에 무료하게 서 있는

키 큰 멀구슬나무 가지 사이로

타원형의 초록색 바람이 지나갔다

 

전송하러 온, 시골의 젊은 여자가

처음으로 연기하듯 서투른 동작으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갑판의 아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늙은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 위에

투박한 손바닥 그림자가 흔들렸다

 

가로등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심했다

아이들은 청청한 공기를 가르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기에 바빴다

 

빨리 뭍으로 가야 할 나는 그저

닻이 올라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은하수 건너 외할머니 댁으로 김성주

       -옥수수 2

 

 

옥수숫대가 긴 팔을 뻗어

아기들이 놀라요

들어 다가서는 것을 막는다

겨드랑이에 품긴 어린것들

하늘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밑둥치에 달린 것부터 모두 떼 내어

그 여린 것들을 밭고랑에 내팽개친다

맨 위 하나만 남기고

 

어스름이 찾아오고

옥수숫대들이 몸을 비틀기 시작하자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다

 

남겨둔 실한 것들이 영근 날

트랙터를 몰고 밭으로 간다

고랑에 버려진 것들의 마지막 숨결 코끝을 스친다

이 밭주인의 권리로

영글기를 기다렸던 모든 열매들을 부대로 옮긴다

옥수숫대들은 몸서리를 쳤으리라

 

트랙터로 옥수숫대 제기 작업에 들어간다

옥수숫대는 밭고랑 속 쭉정이들을

긴 팔로 부둥켜안고 흙 속에 묻히며

새끼들에게 말했으리라

 

엄마랑 은하수 건너 외할머니 댁으로 가는 거야

 

 


 

한라, 그곳에 - 김순선

 

 

푸르디푸르던 젊은 날의 기상

세월에 바래고 바래다

앙상한 가지로

그곳에 서 있네

 

굽이굽이 산 중턱 골짜기마다

떠돌던 영혼들

백발이 성성한 몸 되어

처연한 모습으로

그리운 산하를 내려다보고 있네

 

아직도 꼿꼿한 자세로

펼치지 못한 꿈을 안고

바람 앞에 서 있는

한라의 군상들

도도한 아름다움으로

하안 그리움만 서려 있네

 

 


 

빗방울 김원욱

 

 

, , 누구신가요

 

움막 입구가 소란스러운데

 

술 한찬 걸쳤는지 비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창 안은 왜 이리 꿉꿉한가요

 

이왕이면 화사한 꽃송이도 함께 왔으면 하네요

 

식탁엔 햄버그스테이크 한 접시, 와인도 한잔

 

며칠 쫄쫄 굶었을 몽달귀도 부르고 멀리서

 

고운 할머니도 오실까, 높은 곳 제단도 풍성하게

 

땅꾼을 피해 멀찍이 숨어있는 구렁이도 달래주고

 

오랜만에 톡톡

 

누구신지

 

공중 문 활짝 열어놓고

 

 

                      *계간 제주작가2024 가을(통권 제86)에서

                                   *사진 : 사라오름의 상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