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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애월문학' 2024 제15호의 시(9)

by 김창집1 2025. 1. 31.

 

 

이름 부르기 김정수

 

 

헤어진다고 서러워 마라

다시 못 만난다고 섭섭해하지 마라

 

너를 생각하며

매일 밤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

고개 들어

하늘을 보겠다.

 

그때 달이 떠오르거든

간절하게

너의 이름을 불러보겠다.

 

너도

그 달이 보이거든

울지만 말고

이름 한 번

불러봐 주면 좋겠다.

 

 


 

놓친다는 것 김종호

 

 

제주시에서 술을 마시다가 막차를 놓치고 그는

심심치 않게 네댓 시간을 걸어서 집에 오곤 했다

그렇게 자꾸 버스를 놓쳤다

표류하는 배 같았다

말똥가리는 온몸으로 내리꽂혀

날아가는 생의 순간을 움킨다

시간도 기회도 충분하였지만

그는 말똥가리처럼 살지 못했다

소리치는 거리, 사람들의 눈빛 뒤에서

세상은 너무 넓고 두려웠다

세상은 그런 거라고

환경은 내 탓이 아니라고

밤마다 꿈을 꾸었다, 개꿈이다

그의 개꿈이 현실이 되었다면

그 무게에 짓눌려서

그의 지금은 없을 것이었다

더러는 놓치고 살아도 좋을 일

부러 놓치기도 하면서

놓칠 것은 놓쳐야 한다 슬픈 일이지만

그 많은 후회가 그의 오늘을 조율하였다

그는 미끈한 시인도 화가도 못되지만

몰입과 사유는 조각가의 정과 망치였다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면서, 그는

앞선 자들이 놓친 낱낱을 본다

돌아온 당자가 회개할 것 없는 아들보다

아버지의 큰 기쁨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위로 받는 유일한 역설이다

막걸리 한 잔에 천하를 얻은 듯이 그는

지금도 개꿈을 꾸는 자신을 사랑한다

하나님은 그 아닌 그를 만들지 않았기에

그가 세상의 존재 이유가 된다

그의 뜰 감나무에서 노래하는 새는

한 번도 파랑새인 적이 없지만

이 겨울 메마른 가지에서

바람에 떨면서 노래하는 직박구리는

파랑새가 아니어서 형제만 같다

 

 


 

연리지 - 김중식

 

 

사랑을

하려거든

이런 사랑을

   

  나무도 보니 정이 아주 깊이 들었는가 보다. 어쩌면 저렇게 두 몸이 한 몸과 같이 될 수 있을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目下一見이다. 인간사에서는 夫婦一心同體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와 같이 <연리지>를 보면서 마음 깊이 새겨 볼 일이다.

 

 


 

추억의 소렌토 그 풍경 김창화

 

 

남뜨르* 동산 길에서 보는

쪽빛 봄 바다

몽돌 해변 바닷물너울의 하안 선

 

저 먼 소나무 숲 속

다문다문 펼쳐진

붉은 기와지붕의 아담한 펜션들

 

어쩌면 정겨운 저 풍광

고향해변과 서로 만나는 소렌토** 해변

 

아내와 함께 했던 그 여행길

아련한 기억의 소렌토

 

추억의 떨림으로 다가오는

고향해변에서 다시 보는 소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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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뜨르 - 애월읍 신엄리 남뜨르 해변.

** 쏘렌토 - 이탈리아 지중해연안의 해변도시.

 

 


 

난초蘭草 - 김충림

 

 

산야 모진 바위틈

찬 이슬 머금으며

청초하고 의연히 살아

사철 푸르르고

 

얌전히 뽑아 휘어져 올린

청아한 한 줄 잎새

올곧은 기상 일러라

 

간드러지게 휘어 내린

나신 같은 잎새는

뭇 사내의 애간장을 태웠네

 

꽃송이마다 그윽한 향 풍기며

그 속을 드러내도

서릿발 같은 절개

고요히 숨기었네

 

하여, 예부터

고결한 선비 벗이 되어

고고히 살아왔지

 

녹차 한 잔 앞에 놓고

창가의 난 분

아름다운 생 조용히 음미하며

오늘도 시간을 흘려보낸다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2024. 1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