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부르기 – 김정수
헤어진다고 서러워 마라
다시 못 만난다고 섭섭해하지 마라
너를 생각하며
매일 밤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
고개 들어
하늘을 보겠다.
그때 달이 떠오르거든
간절하게
너의 이름을 불러보겠다.
너도
그 달이 보이거든
울지만 말고
이름 한 번
불러봐 주면 좋겠다.
♧ 놓친다는 것 – 김종호
제주시에서 술을 마시다가 막차를 놓치고 그는
심심치 않게 네댓 시간을 걸어서 집에 오곤 했다
그렇게 자꾸 버스를 놓쳤다
표류하는 배 같았다
말똥가리는 온몸으로 내리꽂혀
날아가는 생의 순간을 움킨다
시간도 기회도 충분하였지만
그는 말똥가리처럼 살지 못했다
소리치는 거리, 사람들의 눈빛 뒤에서
세상은 너무 넓고 두려웠다
세상은 그런 거라고
환경은 내 탓이 아니라고
밤마다 꿈을 꾸었다, 개꿈이다
그의 개꿈이 현실이 되었다면
그 무게에 짓눌려서
그의 지금은 없을 것이었다
더러는 놓치고 살아도 좋을 일
부러 놓치기도 하면서
놓칠 것은 놓쳐야 한다 슬픈 일이지만
그 많은 후회가 그의 오늘을 조율하였다
그는 미끈한 시인도 화가도 못되지만
몰입과 사유는 조각가의 정과 망치였다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면서, 그는
앞선 자들이 놓친 낱낱을 본다
돌아온 당자가 회개할 것 없는 아들보다
아버지의 큰 기쁨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위로 받는 유일한 역설이다
막걸리 한 잔에 천하를 얻은 듯이 그는
지금도 개꿈을 꾸는 자신을 사랑한다
하나님은 그 아닌 그를 만들지 않았기에
그가 세상의 존재 이유가 된다
그의 뜰 감나무에서 노래하는 새는
한 번도 파랑새인 적이 없지만
이 겨울 메마른 가지에서
바람에 떨면서 노래하는 직박구리는
파랑새가 아니어서 형제만 같다
♧ 연리지 - 김중식
사랑을
하려거든
이런 사랑을
나무도 보니 정이 아주 깊이 들었는가 보다. 어쩌면 저렇게 두 몸이 한 몸과 같이 될 수 있을까?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目下一見이다. 인간사에서는 夫婦一心同體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와 같이 <연리지>를 보면서 마음 깊이 새겨 볼 일이다.
♧ 추억의 소렌토 그 풍경 – 김창화
남뜨르* 동산 길에서 보는
쪽빛 봄 바다
몽돌 해변 바닷물너울의 하안 선
저 먼 소나무 숲 속
다문다문 펼쳐진
붉은 기와지붕의 아담한 펜션들
어쩌면 정겨운 저 풍광
고향해변과 서로 만나는 소렌토** 해변
아내와 함께 했던 그 여행길
아련한 기억의 소렌토
추억의 떨림으로 다가오는
고향해변에서 다시 보는 소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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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뜨르 - 애월읍 신엄리 남뜨르 해변.
** 쏘렌토 - 이탈리아 지중해연안의 해변도시.
♧ 난초蘭草 - 김충림
산야 모진 바위틈
찬 이슬 머금으며
청초하고 의연히 살아
사철 푸르르고
얌전히 뽑아 휘어져 올린
청아한 한 줄 잎새
올곧은 기상 일러라
간드러지게 휘어 내린
나신 같은 잎새는
뭇 사내의 애간장을 태웠네
꽃송이마다 그윽한 향 풍기며
그 속을 드러내도
서릿발 같은 절개
고요히 숨기었네
하여, 예부터
고결한 선비 벗이 되어
고고히 살아왔지
녹차 한 잔 앞에 놓고
창가의 난 분
아름다운 생 조용히 음미하며
오늘도 시간을 흘려보낸다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 2024. 제1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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