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혜향문학' 2024 하반기호의 시(5)

by 김창집1 2025. 2. 2.

 

 

강상돈

 

 

너와의 기억이 가슴 속에 깊이 박혀

온몸이 아프지만 빼낼 용기가 나지 않아

고독이 밀려오는 곳, 맞부딪쳐 엉켜있다

 

너의 웃음, 너의 눈빛, 종일 껴안은 작은 못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히 박히고

자꾸만 아리게 한다, 아픈 마음 휘어진다

 

잃어버린 꿈의 잔해 못이라는 그대 이름

나를 때리고 간 산만한 가을날에

오늘도 숨을 죽이며 짓눌린 채 살아간다

 

 


 

목어 2 김대봉

 

 

중생이 목탁을 치며 법문을 외시는데

 

목탁만 악기더냐

풍탁도 악기라며

 

타 악 탁

풍탁을 치며

 

풍경 읊는

 

 

 


 

포착하다 이창선

 

 

풀잎에 맺힌 이슬이 떨어질까 위태롭다

목숨 줄 연명하듯 간신히 버텨내며

단두대

걸린 시간이

길지마는 않았다

 

풀끝을 바라보니 나의 생도 위태롭다

앞만 보며 걸어온 길, 풀잎 끝에 매달려서

점점 더

마음의 무게가

커져만 가는 하루

 

 


 

애월涯月 - 곽은진

 

 

고요한 물가에 내려앉은 달

은빛 물결 속에서 조용히 춤을 추네.

밤하늘의 빛이 물 위에 스미듯

잔잔한 물속 깊이 달이 번지네

 

바람이 살짝 흔들어 놓은 물결

그 속에서 달빛은 일렁이며 흩어지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그 조각들은

마치 꿈결처럼 내 마음에 머무네

 

물가에 비친 달, 그 고요한 풍경 속에

시간은 멈추고 마음은 깊어지네

어둠을 밝혀주는 너의 부드러운 빛이

나의 밤을 조용히 감싸 안네

 

 

 

[문인초대석]

 

국수를 삶는 저녁 서숙희

 

 

촘촘한 체 같은 어스름이 번져 오고

사랑니 뽑혀 나간 동그란 아픔 위에

봄 저녁 물 끓는 소리 무심하게 고이는데

만지면 부서질까 당신의 마음가닥

가늘고 빳빳한 쓸쓸의 올올들이

뜨겁게 곤두박질치며 물속에서 몸을 푼다

참았던 시간들을 찬물로 행궈 내면

어쩜 몇 가닥쯤은 당신에게 가 닿아

반음 쯤 낮은 자리에서 흰 음계로 울어줄까

 

 


 

푸른바다 김정희

 

 

해가 수평선 너머로 떠나며

어둠에게 부탁했어

 

푸른 바다를 부탁해

 

어둠은

푸른바다를 숨겨주었어

 

하지만 깊고 깊어서

푸른바다는 다 숨겨지지 않았어

 

다음날 해가 돌아왔을 때

푸른바다는

숨비소리 내며 튀어 올랐지

휘파람새들이 파드닥 거리며 날아올랐지

 

 

              *혜향문학회 간 혜향문학2024/하반기 제2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