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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시

계간 '제주작가' 겨울호의 시(9)

by 김창집1 2025. 3. 23.

 

 

 

갈대 가시리 오세진

 

 

오널날 요디

구석물당에 앚앙

열뇌하주 삼천벡메또 하르바님이영

토산 가지 갈른 일뤠하르마님이영

ᄒᆞᆫ디 메왕

 

족은 복에 복 엇인 ᄌᆞ손덜

ᄌᆞᆯ른 명에 명 엇인 ᄌᆞ손덜

 

복이민 복이영 명이민 명이영

ᄂᆞ려줍센 ᄒᆞ명

 

날을 갈르젠 ᄒᆞ난

무자년만도 아니ᄒᆞ곡 기축년만도 아니ᄒᆞ난

 

국은 갈르젠 ᄒᆞ여도

가시리만도 아니ᄒᆞ곡 제주만도 아니ᄒᆞ곡

 

안좌리에 가신 ᄌᆞ손덜

가시리 처처에 가신 ᄌᆞ손덜

동천에 가곡 서천에 가신 ᄌᆞ손덜

저어 한모살에 압바당에 가신 ᄌᆞ손덜

동척에 육지에 대전 대구 광주 부산에 가신 수() ᄒᆞᆫ ᄌᆞ손덜

 

을허들곡 땅 알에 눕엉

갈대로 하늘에 글을 쓰옵눼다

 

이 갈대밧듸 저 갈대밧듸

ᄀᆞ들락 ᄀᆞ들락

연유 연유

몬딱 흔 번에 써부난

 

하르바님 하르마님

흐나ᄌᆞ손 ᄒᆞ나연유

ᄀᆞ들 ᄀᆞ들 보아줍서

 

벵곳오름 ᄎᆞ지 한집님

설오름 ᄎᆞ지 한집님

갑선이오름 추지 한집님

가세오름 ᄎᆞ지 한집님

 

살려옵서 살려옵서

영연탁상(靈筵卓床) 어간(於間)ᄒᆞᆸ고

탁상 우전 살려옵서

 

 


 

불타는 나무

 

 

  오리나무 위에 바람이 쉬고 있다 벌거벗은 영혼이 쉬고 있다 바람이 오리나무를 흔들고 있다 오리나무에 떨어지는 빛을 흔들고 있다

 

  먼지가 이는 길 위에서

  죽어가는 지령이

  참혹한 시를

  검은 흙 위에 부려 놓는다

 

  온몸이 나들이 가고 있었다

  몸부림치고 있었다

 

  오리나무가 붉은빛 속에 있다 불타고 있다 밤이 되면 내 안에 있겠지, 몸부림치는 나무

  (그리고 시간 속에 있겠지 시간의 물을 마시고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채)

 

  너는 다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찾아을까 바람이 오리나무를 흔들어 놓고 떠나버린다

 

 


 

분홍 소시지 - 현경희

 

 

노른자, 흰자 휘휘 저어 경계를 없애고

쪽파 송송 썰어 초록초록 무늬를 입히고,

충분히 제 몸 하나 분신할 준비가 된 주물 후라이팬에

얇고 동그란 분홍 소세지를 부친다.

매일 매일이 농번기,

오늘 더 풀이 죽은 엄마의 일바지

입이 나은 경운기에 허리춤을 구겨 넣고

다섯 마지기 마늘밭에서 인생을 태울 엄마가 집을 비우면

곱게 익어가던 분홍 소세지

세 살 터울 미운 남동생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반찬에

날름날름,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곱게곱게 반달 만들어 가며 먹던 누나

게눈을 뽑아버 릴 기세로 냅다 던져버린 밥그릇

밥알이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서러워 까맣게 멍들던 분홍 소세지

툴툴툴 털털털

꺼질 듯 짠 내음 가득한 경운기

해가 지고 별이 하나 둘 깜빡이면

이듬을 함께 이고 오는 엄마

빨갛게 익은 소세지 열 개

엄마 팔 다리 여기저기 인감도장처럼 찍혀있다

 

 


 

유통기한

 

 

어떤 제품은 유통기한이 너무 짧다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

기한이 다가올수록 속이 타들어간다

한때는 신상품처럼 잘 나갔던 그녀

냉장고를 벗어난 아이스크림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제단기로

뚝 잘라 내다 버리는 일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지정된 날을 향해 가고 있다

시간을 찍어 내지 않았을 뿐

하루가 마감되어 흐른다

병원에서도 침대 회전율이 있는 걸까

철마다 바뀌는 계절 과일처럼

다가왔다 멀어지는 사람들

매미 울고 귀뚜라미 소리 가고

가을 다 지나는데 들리는 울음소리

아득하게 들리는 유통기한이 있을까

 

 

                    * 계간 제주작가2024 겨울호(통권 제87)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