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로움 – 부정일
외로움은 늘 혼자다
다 내려놓고 익숙하지 못한 것이
누가 옆에 있어도 외로움이다
가출해 돌아오지 않는 강아지처럼
일탈을 생각하는 것도 외로움이다
방파제를 때리고 파도가 부서질 때
눈 딱 감고 뛰어내리고픈 생각이
곧 외로움이다
뜸들인 외로움이 또 다른 외로움과
만남은 가뭄에 단비 같은 것
바라보며 마주 앉은 술병 속에
위로의 추임새가 찰랑거릴 때
목구멍으로 털어 넣는 한 잔의 술이
외로움에 대한 처방이다
♧ 남생이 연못 – 김항신
41인 청년들 속에
20인의 넋은 흔적도 없어
왜가리 우물에 젖는다
남생이들 어디로 갔는지
넋 기리는 행렬의 늦은 저녁
갈까마귀 군중회의는 아직도
뭐라는지
영웅들에 숨은 이력 그
빛 석양에 들어
오늘을 걷는 3인방 신. 진. 영.
나, 오늘 이곳 오길 잘했네
♧ 창밖의 남자 – 문용진
문밖에 한 남자가 서성이고 있다
문을 열까?
손을 문고리에 댔다가
돌아서서 거리로 나섰다
불 꺼진 쇼윈도가 어둠에 흔들린다
그 앞을 지나는 남자의 뒷모습
그림자 되어 어른거린다
모퉁이 희미한 불빛에 홀린 듯
사내가 창문 앞에 서 있다
한 남자가 보인다
취한 모습이 불빛에 익어있다
단호한 입술이 일그러진다
♧ 새로운 인식 – 백용천
동사무소에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지문이 틀려 기다리고 있다
‘인식기로 본인을 증명할 방법이 없네요’
두 분은 한 참 살아온 길을 점검하듯
달라진 지문의 경로를 찾고 있다
‘어르신, 두 분 다,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엄지에 물결이 회오리치는 중,
‘뭐가 지워졌다는 것이요, 단단헌게, 더 잘만, 보이는디’
태풍에 이겨낸 흉터를 내민다
♧ 그곳 – 송인순
오가는 이 붙잡지도 않는다
되새김질로 뱉어낸
팔랑못 마를 날이 없이
찾은 이 붙잡는다
파도에 젖은 갈매기
섬길 따라 피운 사랑 가득한 곳
소라껍데기 묵언으로 섬을 채울 때
섬지기 등대 떠나는 이 마중한다
또 오리라,
약속은 못한다
기다리지도 마라
그래도, 잊지는 마라
방랑객의 가슴에 품었던
첫사랑 남긴 애틋한 그곳
따라 등 돌린 돌담 안에
섬길
눈물 담은 해당화 피운 곳
*한라산문학동인회 간 『한라산, 보길도를 걷다』 (2024, 통권 제37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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