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천단에서 시작되는 1코스
제77주년 4․3 추념식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아라동 4․3길을 걷기로 했다. 이번 추념식 슬로건은 전국적으로 모집해서 당선된 ‘4․3의 숨결은 역사로, 평화의 물결은 세계로!’라는데, 그에 맞춰 4․3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라동 4․3길은 두 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1코스는 산천단에서 문형순 경찰서장의 묘지터, 설새미주둔소, 죽성마을, 제주양씨 열녀비, 인다 4․3성, 박성내 등을 거치는 8.3km 구간으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2코스는 4․3때 큰 피해를 입은 관음사에서 진지동굴, 동세미, 불칸낭, 월평 4․3성, 2연대 군인전사자 추모비, 조록나무를 거쳐 영평상동 마을회관에 이르는 9km 구간으로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산천단은 전에 소개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다만 이번 취재한 날이 ‘한라산신제’ 입제일인 3월 21일이어서 산천단 입구에 현수막이 걸렸다. 23일 본제에서는 행사장에서 제례와 함께 길트기, 한라산신놀이 등 전통문화 공연을 펼친다. 그 외 가훈 써주기, 소원지 달기 등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했다.
*문형순 경찰서장
□ 문형순 경찰서장 묘를 찾아서
산천단에서 출발 5.16도로로 나온 뒤 북쪽으로 내려오다 네거리에서 왼쪽 선돌 목동길로 접어든다. 길목에는 커다란 아라동 역사문화탐방로 입간판이 서 있다. ‘제주 별빛누리공원’ 진입로이기도 하다.
오른쪽 길 입구에 아라4․3길 특유의 진행 안내간판이 서 있다. 곳곳에서 길을 안내하는 이 간판은 타원형으로 진행방향과 거리, 현재 위치 등을 표시하고 있어, 길을 알리는 리본과 함께 좋은 길잡이가 된다. 얼마 안 가 왼쪽으로 난 길목에 문형순 서장 무덤이 있다는 안내간판이 서 있다. 숲길을 조금 걸다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무덤들이 나타나고, 입구에 들어서면 ‘제주평안도민회 공동묘지관리위원회’의 안내판이 서 있다.
그리 크지 않은 공동묘지에는 30여 기의 무덤들이 모여 있고, 오른쪽 맨 뒤에 커다란 표석이 서 있다. 전에 몇 번 와 본 바로는 전면에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 옆에 문형순 경찰서장의 무덤이 있었지만, 작년(2024년) 6월에 ‘호국원’으로 옮기면서 앞에 놓였던 상석과 향합만 소나무 밑에 남겨놓았다. 구석에 서 있는 크고 하얀 표석은 ‘평안도민회 공동묘지’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 뒤 담 모퉁이에는 2020년 12월 23일에 제주경찰청과 평안도민회에서 세웠던 ‘경찰서장 문형순지 묘’라는 표석과 1976년도에 박정희 대통령하사금으로 세웠다는 ‘고 남평문공 형순지묘’라는 낡고 초라한 표석이 남아 있다.
□ 문형순 경찰서장과 제주4․3
문형순(文亨淳, 1897〜1966) 경찰서장은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 후 만주 한인사회 준 자치정부인 국민부 중앙호위대장을 지냈으며, 조선혁명군 집행위원이었다. 한국의용군을 시작으로 임시정부 광복군 등에 소속되어 독립운동을 펼쳤던 인물이다. 해방 후 경찰에 투신하여 1947년 7월 제주도에 부임하였다.
1948년 12월 군경은 대정읍 하모리 좌익총책을 검거해 관련자 백여 명의 명단을 압수하고 이들이 처형될 위기에 놓였으나 당시 모슬포 경찰서장이던 문형순은 자수를 권유하였다. 그리고 조남수 목사와 김남원 민보단장의 설득에 따라 관련자들이 자수하자 이들을 전원 훈방하였다.
그가 1949년 성산포 경찰서장이 된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예비검속된 주민들에 대한 군 당국의 학살 명령을 거부해 성산면 지역의 예비검속자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당시 성산포경찰서 관할지역의 백조일손사건의 예비검속으로 희생당한 사람은 모두 6명이었다. 이는 문형순 서장이 불가피하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으며, 읍면별로 수백 명씩 죽음을 당했던 다른 지역의 상황과 비해 성산면 지역은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 설새미 군주둔소 터
공동묘지 앞쪽으로 안내 리본이 가리키는 대로 숲길로 들어서서 잡목림을 지나니, 삼나무 숲이 나타나고 억새밭에 이어 오른쪽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다. 그 길을 걸어 북쪽으로 나오면 제대 앞 네거리에서 정실로 이어지는 한북로다. 그 길을 따라 걸다 보면 오른쪽 주유소 못 미쳐 왼쪽에 ‘설새미 주둔소’ 가는 길임을 알리는 안내간판이 보이고, 리본을 따라 200m 정도 걸어가면 길 끝에 주둔소 터임을 알리는 안내 표석이 있다.
아라동에서 세운 표석 안내문은 ‘이곳은 제주4·3사건 당시 11연대 1대대 군인들이 천막을 설치하여 주둔했던 군주둔소 옛터다. 설새미는 원래 샘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용출량이 풍부하여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본군의 전초기지가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죽성 마을당 앞에 있는 설샘에서는 대규모 용천수가 나온다.’로 시작된다. <계속>
*산천단 곰솔
*이글은 '삼다일보'에 연재하는 필자의 글입니다.(2025.4.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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